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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l 07. 2017

대화가 필요해지기 전에 대화하라.

좋은 관계를 위하여

 별것도 아닌데 어떤 특정 단어에 상대가 발끈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좋은 관계가 되지 않는 이유로서 대화의 결핍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이다.

'개념의 규정 차이'


 각자 서로가 어떤 개념에 대하여 정의를 어떻게 내린 상태에서 말하고 있는지(전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해와 편견엔 끝이 없다. 이 글의 제목, '대화가 필요해지기 전에 대화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화를 많이 할수록 그것에 대해 감을 잡는다.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차이가 있구나.' 공감하게 되고 점점 간극이 좁혀진다.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 등 이분법으로 가르는 게 아니라, '넌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하는 걸 이해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감정 상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만약 이 과정이 생략된다면 상대의 백지 같은 순수함에도 새까만 계산이 깔려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 것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은 자연히 높아지게 되는 법이다. 오해는 어디에서 오는가? 개인마다 연상작용이 되는 단어가 있다. 그 연상은 선택적 수집과 경험적 수집에 기인한다. 선택적 수집은 내가 선택적으로 학습한 것을 말하고, 경험적 수집은 체험을 통해 체득되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간접적으로 주변 환경에 의해서 습득되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는 미디어에서 노출되어 보편적으로 그렇다고 여겨지는 개념 규정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마다 상황에 따라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감성사전이 있는 것이다. 그 감성은 자칫 감정을 건드릴 수도 있다. 좋은 쪽이든 그렇지 않은 쪽이든 말이다. 서로의 감성사전을 존중하며 대화를 많이 이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의 '발끈함' '울컥' '욱'하는 걸 두고서, '저 시키 성질이 더러워서' '하여튼 또라이야'라고 치부하거나 '소심해' '사소한 거에 저러냐'라고 상처를 남기거나 관계에 금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개념 규정을 나에게 그 상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혹은 좋아한다고 해서 전부 다 맞춰주진 않아도 된다. 그도 나를 나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그게 진짜 좋은 관계를 맺는 방법일 테니까. 우린 모두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하고, 기왕이면 짧더라도 좋은 관계이길 바란다. 그렇다면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해야 한다. 개인 간 개념 규정이 다름을 이해하고 틀리다는 지적이나 상처주는 말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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