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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Sep 28. 2017

아주 사적인 대화록(미용실)

글쓰기 주제: 들은 것 & 대화(170928)

오늘은 여자친구가 추천해준 헤어스타일 사진을 들고 일주일 전 리모델링 후 그랜드 오픈한 단골 미용실에 간 날이다.

이미 '카카오 헤어'라는 어플을 통해 내 헤어를 담당할 디자이너님이 원하는 헤어스타일(가르마펌)견본 사진을 본 상태여서 편했지만, 손님이 나만 오는 게 아닐 테니 굳이 한 번 더 직접 보여드렸다. 요 헤어스타일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다듬고 두 달 정도는 기른 후(한 달 있다가 부분적으로 다듬어야 하지만)펌을 해야하는 헤어라 한다.


10cm 권정열(로 추정되는 사진). 새로운 헤어디자이너는 처음에 이 사람이 나인줄 알았다고 했다.(어딜봐서..?)

 그랜드 오픈을 했다는 건 단지 매장을 넓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위치를 제외하고 모든 게 바뀌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기존 시스템은 물론 원장과 직원까지 전부.


우연히 이 미용실 근처로 이사를 온 후 줄곧 이 곳을 이용하면서 약 반년 정도 전담 디자이너에게 내 헤어를 맡겼기 때문에, 오늘은 좀 불안했다. 처음 보는 헤어디자이너가 처음 내 머리를 매만지는 것이니까. 그전에 전담 디자이너는 메모를 미리 해놓았는지 척하면 척 "리젠트 컷 스타일 그대로(한 달 전처럼) 커트해드릴까요?"

/(끄덕)

"그럼, 투블럭 6미리로 밀어드릴게요~"라고 긴 대화가 필요 없이 바로 진행했는데 말이다. 굳이 멘트가 있었다면 "어플에 리뷰 남겨주신 거 감사해요."정도였다.

애석(?)하게도 새로운 헤어디자이너는 나와 라포 형성 및 정보 교환이 필요한 터였다. 모든 이별은 그 자체로도 서글프지만, 새로운 만남에서 귀찮은 일(나를 소개하는 일 등)을 반복해야 하는 사실도 비켜갈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직원-고객) 관계에서 이어지는 대화는 언제나 내가 손해다. 나는 헤어디자이너의 정보를 거의 알지 못한 채로 내 정보를 빼앗기다시피 '자기소개'해야 하는 면접자의 입장이 되고야 만다. 그저 유연하게 거짓말을 하면 될 것을 나는 질문에 '솔직한 대답하기'를 피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영업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어리석다.


"출근 안 하고 쉬는 날이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 아니요. 프리랜서라..

"어떤 일 하세요?"

/강사, 하고 글 쓰는 일 하고 있어요.

"아, 작가세요?"

/아, 네네(수줍)(왜 이 대목에서 나는 늘 고개를 뻣뻣하게 들지 못하는가. 내 책이나 글쓰기 활동과 관계되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렇겠지 뭐.)


"책 제목 알려주시면, 읽어보...기 위해서 노력해볼게요."

/아, 아니에요.

"저 책 자주 읽어요~ 어려운 책만 아니면.."
(내가 침묵 하자, 화제 전환하는 헤어디자이너님)
"이 헤어스타일은 왜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여자친구가 하라고 해서요..(파워 당당)

"아, 제가 왜 여쭤보냐면요. 얼굴이 좀 기신(말형인) 편이시잖아요. 그래서, 이 머리를 요케 요케 하시면 얼굴 긴 것이 노출되실 수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려고요. 근데, 여자친구 말이면 어길 수 없죠. 호호호"


/아 제 얼굴이 길어 보인다.. 고요...말형..(하하)

(나는 아마도 이 순간, 관상학적으로 이 분이 헤어 디자이너를 하는 것에 이질감을 느꼈다.)
(헤어디자이너는 자신의 직설적인 견해에 대한 내 멋쩍은 반응이 이내 민망했던지, 다시 화제를 전환했다.)


"오늘 머리하고 여자친구 만나세요?"

/아니요.

"아, 다른 약속 있으세요?"

/아니요.

"아, 오늘은 어디 안 가시고 집에서 쉬세요?"

/아니요.

(옆에 있던 보조하는 직원과 함께 웃음 터짐)


/제가 하는 일이 좀, 한량이다 보니(실상은 미용실 바로 옆 24시 카페를 간다).


"아, Yolo족이신가 봐요?"
 (-이 말은 대략, 내가 유명하지 않은 경우에 따라오는 말이다. '글쟁이 이신가 봐요?'라고 묻기도 하고, '저도 한 때는 문학소녀(소년)여서 책 한 번 내볼까 생각해봤는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김없는 패턴 내지는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아, Yolo족은.. 아니고요.

"하고 싶은 일하면 Yolo족이라던데, 요즘?"

/Yolo족은 (개념이) 너무 왜곡되어 있어서.(-라고 말하면서 '왜곡'과 '와전' 중에 하나를 고르느라 순간 고심했다.)


('왜곡'이라는 단어가 요즘말로 '진지충의 댓글'과 같이 되어 버렸다. 예상 못한 나의 진지한 멘트로 인해 이후 모든 대화는 단절되었다.)


여자친구 말마따나 이럴 땐 첫 질문에 그냥 "쉬는 날이에요."하면 끝나는 건데, 나는 자기 PR에 익숙한 사람인가 보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했다면 책을 팔 수도 있었고, 이 미용실에 내 책을 '비치' 해놓을 수도 있을 터였다. 본능은 거기에 가 있는데, 내성적인 성향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샴푸 후 머리를 말리고서 왁스를 바르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나 감사합니다- 대신 내가 선택한 인사말이었다.)
"(그랜드 오픈 이후) 제가 앞으로 예쁘게 하고 싶으신 스타일로 잘 해드릴게요~ 이제 사진 안 가져오셔도 되게끔 다 메모해둘 테니까요. 앞으로 (사진은) 안 챙겨 오셔도 되세요^^ 카카오 헤어로 예약결제하셔서 그냥 가시면 되고요~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멋지시네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물함에서 셀프로 가방을 챙겼다.

" 저는 (앞으로 이동영 고객의 담당 헤어디자이너) 에스더였습니다."(-하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네, 고맙습니다.(-하고 매장을 나왔다)


녹취를 한 것도 아닌데, 이 모든 대화가 정확히 5시간 30분이 지나고서 생생하게 기억나는 나도 참 별나다.

내심 만족하는 미소를 보라(뿌듯) 두 달 동안 열심히 길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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