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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Oct 27. 2017

신호등에서

글쓰기 클래스 5기 주제: 기분(171027)

요즈음은 빨간 신호등에 걸음을 멈춰 서기만 해도 괜한 눈물이 왈칵하고 차오른다. 스마트폰을 오래 하고, 책을 오래 읽고, 노트북 모니터를 오래 보니 안구가 건조할까 봐 눈물약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데, 비싼 약값이 무색하게 수시로 눈물이 고인다. 신호등은 질서 유지를 위해 사회에서 약속한 외부의 규제로 멈춤을 유도하는 동시에, 내가 '안전하게 살기'위해서 존재하는 내 인생의 무엇과 닮아있다. 실제 세상 모든 '빨간 신호등으로 상징되는 것'에 나는 멈춰 서고 만다. 그때마다 눈물은 어김없이 차오른다.


나는 그 눈물을 흘리는 법이 없다. 차오른 눈물을 흘려보내지 않는 이유는 '참는 것'이 아니라, 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울면 슬퍼지니까. 차라리 웃을 일을 만들어 낸다. 장난을 칠 수 있는 여자친구와의 통화에서 온갖 농담을 하며 진지한 상황을 벗어난다.


내가 걸어가고 있을 때 눈물은 멈추고(온전할 틈 없이 삼키는 거겠지만), 내가 멈추면 눈물은 차오른다. 굳이 이 눈물이 나쁘다고 규정하고 싶진 않다. 눈물을 참아야 사내 대장부고 이딴 건 다 헛소리니까. 남자이기 전에 사람은, 인간은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한다. 멈춰 섰을 때 차오르는 눈물은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용기 내어 계속 전진하고 있음의 반증이라 믿는다.


도보로 마주치는 신호등은 차도와 다르게 노란 불(준비 신호등)이 없다. 빨간 불과 파란 불일뿐이다. 준비할 틈도 없이 혹은 빨간 불에 주변 상황을 보고 눈치껏 준비해야 한다. 사실 그건 세상의 논리이다. 내 인생은 그저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건너고,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멈출 뿐이다. 가끔은 정말 나 홀로 있다고 생각해서 횡단을 자행할 때도 있다. 어떤 소음이나 빛도 없을 때 그건 무단 횡단이 아니다. 그저 거기에 신호등이 멀뚱히 있고, 나는 다만 내 길을 걸어가는 것뿐.


저 멀리에서 파란 불이 보이는데, 누군가는 건너고 나는 깜빡이는 탓에 멈춘다. 가끔 함께 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누군가에게 파란 불이, 누군가에게는 빨간 불로 배당되는 세상이다.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의 이치이다. 그렇게 받아들인 기다림의 여백은 생각보다 많은 비움을 얻게 한다.


나의 응어리진 가슴은 오늘도, 저 빨간 불 앞에서 속절없이 가느다란 눈물을 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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