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영 글쓰기 Feb 07. 2018

고은 En시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문단권력의 민낯

최영미 시인의 용기에 감사합니다.

나는 줄곧 문단 권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지만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등단 작가도 아니고, 그들과 부대끼는 사람도 아니기에 그랬다. 최근까지도 이런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잘못된 구조의 문단권력에 대해 ‘아는 대로’ 언급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고 그러니 먼저 말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태도는 모순적이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등단제도’에 대해 궁금한 수강생들에게는 정보 차원에서 등단 방법 등을 알려주곤 하며 문단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아꼈으니까.


나의 ‘아는 대로’에서 그 앎을 준 정보원은 이렇게 주장하곤 한다. 몇몇 평론가나 중견 작가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메이저 출판사나 문예지, 신문 등에 써주는 평들로 인해 그 작가의 평이 완전히 달라지고(혹은 언급하지 않거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활동 가능)여부가 결정된다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실체를 밝히며 이의를 제기한 이들이 있구나 정도로만 나는 인식하고 있었다.

http://naver.me/5KecuUw0


역시 나는 몰라도 한참이나 몰랐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나는 고은 시인을 좋아했다. 그의 강연도 찾아갔고, 질의응답도 나눴고 책에 사인도 받았다. 같은 고향이라는 걸 늘 자랑스러워 했다. 글쓰기 정규강의가 끝날 즈음엔 그 책을 우수작가(가장 꾸준한 수강생 1인)에게 시상하며 선물하는 전통을 1년 가까이 이어 왔다.

http://naver.me/51cgOYtG

최영미 시인의 풍자시 ‘괴물’에 등장하는 En은 한 원로시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즉, 상습적 성추행을 해온 ‘고은 시인으로 상징되는 문단 권력’의 더러운 꼴을 비틀어 낸 것이다. 피해자는 셀 수 없이 많고, 그녀는 오랜만에 받은 시 청탁(주제: 페미니즘)에 ‘내가 이것(괴물)을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처음 실명을 거론했다가 언론이 이를 퍼나르자, 류근 시인은 고O시인으로 수정 처리했다.


이 풍자시 속 ‘괴물’의 성추행에 대하여 JTBC뉴스룸에서 최영미 시인은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류근 시인은 이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괴물’의 실명을 거론했고, 검색포털에는 금일 내내 실검 1위로 ‘고은’ ‘En’ ‘최영미’ ‘괴물’ 등을 기록했다. 이후 이를 의식한듯 류근 시인은 고O 시인이라고 익명처리 했지만, 이미 En으로 실시간 검색어를 기록하고 있었기에 이를 의식한 익명처리로 보여진다.


물타기가 아니길 바란다는 마지막 문장도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


물론 이 내부고발로 인하여 고은 시인의 문학성까지 추락한 것은 아니다. 문학성은 독자 주관적으로도 평할 수 있으며, 류근 시인의 말마따나 ‘고은 시인의 암울했던 시대 문학적 성취와 투쟁의 업적’은 변치 않을 것이다. 또한 후대에 재평가를 받을 대한민국 문학계 인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최영미 시인의 이 고발로 인하여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던 것과 다른 ‘사실 그 너머의 진실.’ 권력문단의 추악한 민낯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고은 시인의 시집을, 등단을 희망하는 ‘작가지망생’들에게 선물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문학성을 높이 산 메이저 언론들은 괴물을 낳았고, 이를 믿은 대중들은 괴물을 함께 키운 꼴이 되었다.


등단을 준비하던 이들은 남녀불문하고 치를 떨 사건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 문단이란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계에서의 무시무시한 권력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아니면 그 권력을 감시하는 제 2의 시스템으로 이를 어떻게든 보완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 역시도 객관성을 잃은 이 (문단권력- 출판사•언론•대학이라는)주류에 편승하는 쪽 보다는 문단의 평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차라리 유착관계가 없는 외부의 평도 참조하면서 자신의 주관적 취향을 존중하는 작품 선택의 양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https://brunch.co.kr/@dong02/1482

본의 아니게 최영미 시인은 지난 가을에 발표한 시로, 서지현 검사의 폭로이슈에 이어 #ME TOO(나도 당했다)에 참여한 여성으로 비쳐진다. 인터뷰와 언론이 떠드는 시기가 새삼스럽다. 정말 이것이 무언가 덮기 위한 물타기는 부디 아니기를 바란다.



죽은 시인의 사회인가. 죽은 사회의 시인인가?


http://naver.me/5R2r7INQ


가해자들은 성적욕망을 절제하지 못했다기 보다 권력을 악용한 폭력의 형태가 성적으로 드러났다는 걸 본질적인 문제로 분석해볼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다른 조직에서도 권력의 서열이 분명할수록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권력으로 정당하게 발휘해야 하는 해당 권위의 역할•기능적인 면을 초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특히 월권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비겁하고 치졸한 악용이자, 엄연한 범죄임을 상식을 알만한 권력자들은 부디 절제하며 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http://pf.kakao.com/_abhVd

매거진의 이전글 세월호 인양, 참사 3년 만에 떠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