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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y 06. 2021

글쓰기 실력과 필사는 진짜 연관이 있을까?(이동영)

필사로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고함(소리쳐)

필사, 중요한 건 적당한 양의 꾸준함과 방향이다.

글쓰기 실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필사(베껴쓰기)는 '기능적'인 면에서 좋은 평을 받아왔다. 실제 많은 작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강의를 하면서 필사를 글쓰기 연습에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소개해왔다.


그런데 단순히 필사를 하는 자체가 쓰기 실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맹신하는 (글쓰기 강좌) 수강생분을 보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유가 있다. 필사를 어떤 '전제'로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다. 필사는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방향 설 그 전제가 된다. 단순히 많은 양을 빠른 속도로 써내는 건 필사가 아니라 필기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감각을 익힌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만약 가능한 사람이라면... 부럽다. 적어도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서, 필사를 아무리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더라도 글쓰기 실력이 안 는다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띄우고 싶다.


필사만 하면 글을 잘 쓰게 될까?
음, 글쎄다.


나는 필사모임을 수년째 운영해온 모임장이자, 글쓰기 강사이자 에세이스트 작가다. 필사와 글쓰기 실력의 상관관계를 따져볼 만한 자격은 나름 있다고 생각한다. 자, 필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잘 알다시피 필사는 기본적으로 '느리게 읽는 독서행위'이다. 시작부터 필사하기가 힘든 사람은 처음엔 눈으로 읽고 두 번째 독서에 필사를 시도해도 좋겠다. 필사가 죽을 만큼 들고 귀찮은 사람에겐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필사는 원래 힘든 거라고. 그리고 못 견디게 힘들면 그냥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필사를 즐겨하지 않는다. 강의에서나 과거 글에서도 이를 몇 번이나 언급한 바 있다. 필사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기보다 문장 단위로 끊어서 하는 편인데, 이마저도 평소에 잘하지 않는다. 그럼 가끔씩이라도 무슨 근거로 필사를 예찬했냐고? 수년 동안 필사모임을 만들고 주관하여 참여하는 형태로 꾸준히 필사했던 것이 글쓰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을 전달한 거였다.


효과는 있으나 너무 힘들면(성격과 잘 안 맞으면) 혼자서 억지로는 하지 말자-
이게 내 필사에 관한 결론이다. 난 성격과 안 맞는다. 그래서 주로 모임에서만 한다.
아니면 메모 수준으로 하거나 타자로 친다.

그래도 필사를 해야겠다면 혹은 하고 싶다면? 왜 필사를 하는가?(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구체적으로 자신만의 동기를 확인해보면 좋겠다. 대략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동영 글쓰기 강사가 정리한 '필사의 목적' 9가지

1. 힐링을 위하여
2. 의식+무의식에 어휘량을 늘리기 위하여
3. 문장 구사 감각을 익히기 위하여(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전 기본기를 익히기 위하여)
4. 책을 더 깊고 느리게 읽기 위하여(반복 독서를 위하여)
5.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기 위하여(작가의 기분과 감정을(입장을) 느끼기 위하여)
6. 글씨 연습을 위하여
7. 내가 쓴 글의 치열한 퇴고를 위하여
8. 메모하기 위하여(인용-써먹기 위하여)
9. 생산적인 습관으로 그냥... 혼자 하기에 딴 걸로 시간 때우기보단 나을 것 같아서


필사가 몸에 영 안 맞는데 남들이 하도 좋다고 하니까 억지로 하는 거라면 필사 말고 개인 호흡으로 하는 글쓰기 습작을 더 권장한다. 치열하게 퇴고할 때, 김연수 작가처럼 내 글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베끼며 다듬는 것도 필사를 하는 목적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면 나름의 방도를 찾아보시길 바란다.


개인 습작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지 통 모르겠다면 글쓰기 수업을 수강해보라. 하지만 필사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 필사는 글을 베끼는 행위다. 고도의 집중 상태로 나를 끌고 간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돈도 거의 들지 않는다. 시간만 투자한다면 가능하다.


그냥 베껴 쓰는 작업이 글쓰기 실력을 극적으로 향상해 주진 못한다. 그건 판타지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글 쓰는데 하나의 방도가 될 순 있으나 필사가 무슨 단 한 방에 나를 글쓰기 고수로 만들어주거나 하진 않는다. 좋은 책의 필사를 꾸준히 하면 글쓰기 실력은 보상처럼 따라올 순 있겠다.

만약 그 책이나 글을 쓴 작가를 애정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의무감보다는 정말 좋아서 필사를 하게 될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필사를 '푹 빠져서'했다. 훈련처럼 필사적으로 죽을 듯이 했다는 건 적어도 난 못 들어봤다. 일단 내 입장에서 글쓰기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모든 건 회의적이기에 필사를 필사적으로 하는 건 반대다. 내 말이 정답은 아니니까 말하는 거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초보자가 실력 향상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면 그것이 필사적인 필사가 아니라 즐기는 필사이길 바란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필사가 아니라면 굳이 힘들게 글쓰기에 접근해서 빨리 지칠 확률을 높이는 거라 생각해 나는 뜯어말리고 싶다. 첫 장벽만 낮은 문턱처럼 폴짝 넘어가고 나면 글쓰기는 온통 다 장벽이다. 난 첫 장벽부터 높게 설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좋아하는 작가나 최애하는 책을 필사하는 건 좀 다른 문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글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을 받는다. 가장 좋은 점은 작가의 정신을 이해하는 시간이 필사의 시간이란 점이다.


필사는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진행이 가능하다. 작가의 입장에서 필사를 하는 방법이 있고, 독자의 입장에서 유희로 하는 방법, 글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입장에서 세상에 화두를 던지며 하는 방법이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난 가끔씩
작가의 입장에서도 필사를 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가볍게 유희로도 필사를 한다.


꼭 그 글을 쓴 작가로 빙의하는 게 아니라도, 창작자의 입장에서 필사를 하면 결과가 조금 달라진다. 어떻게 자료조사를 했을까? 어떻게 발상을 했을까? 어떻게 이 단어와 이 단어를 조합했을까? 이 문장의 길이는, 이 접속사는, 이 조사는 왜 왜 왜..? 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진다.


피곤한 필사법이다.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다. 가끔씩 독서를 할 때도 독자가 아니라 작가적 시선(+글쓰기 강사의 시선)에서 보면 진도를 빼기가 어렵다. 직업병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가볍게 한 문장 한 문장을 사유하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쓰면 남는 게 많다. 가볍다 보니 쭉쭉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여기저기로 뻗어간다. 나는 글쓰기 초급단계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문장단위로 하는 필사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 문장을 리사이트 한다'라는 생각이면 베스트 필사라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글쓰기가 누가 뭐래도 재밌을 때까진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 말자.


필사에 형식은 없다. 그림을 그려도 좋고, 한 챕터만 써도 좋고, 처음부터 끝까지도 좋고, 한 권의 책에서 딱 한 문장만 필사하고 1시간 동안 이 문장에 관해 사색해보아도 좋다. 누군가 필사에 형식을 규정하고, 그게 필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한다면 1000% 사이비다.


글쓰기라는 도구를 이해하고, 그 도구가 나를 위해 해주는 것- 세상을 위해 해주는 것을 알고 나면 갑자기 신나는 기분이 든다. 그 신나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껴보지 못하면 도구를 던져 버리게 되는데, 그 결정은 자유이지만 글쓰기만 한 도구가 흔치는 않기 때문에 애석하다고 말하고 싶다.


결론은, 필사에 지치지 말고 딱 즐길 정도로만 시작해서 꾸준히 이어간다면 좋겠다는 말이다. 혼자가 어려우면 온라인 모임으로 ZOOM을 이용해도 좋다. 그냥 베껴 쓰기만 하고 끝나는 모임이 아니라, 각자 다른 책을 즉흥으로 준비해도 좋고 모두 같은 책을 사전에 정해서 같은 시간에 필사해도 좋다.


50분 정도 몰입해서 필사를 충분히 하고, 1시간 내외로 그 필사를 하며 느낀 점들- 책 내용을 보고 뻗어간 사유들을 자유롭게 나누면 그 생산적인 시간에 그만 취하고 말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필사모임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거고, 만족도 높은 후기를 숱하게 접했던 거라 감히 확신할 수 있다.


필사, 도전할 만하다.
꾸준함을 기르자!
그러나 지칠 만큼은 하지 말자!

https://linktr.ee/leedong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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