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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y 27. 2023

우산 없이 흠뻑 스며드는 걸 택했다

내가 지금껏 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온 걸까,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고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행복해서 두려운 느낌.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이 내 앞에 지금 이 타이밍에 나타난다고?

계절다운 하루에 나다운 만남을 만끽했다. 외로움을 예찬하는 나에게 외로울 틈 없는 웃음이 종일 내렸다. 시원했고 따뜻했고 맛있었고 달콤했고 오묘했고 편안했고 다정했고 깔끔했다.

나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으니 그대로 이뤄졌다. 내 글처럼 말이다.

아까는 건물 안에 들어가 1층에 우산을 꽂아두었다. 밖엔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우산을 잃어버렸다. 누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문을 열고 밖을 나섰다. 뭐, 젖어도 좋았다. 스며든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끼는 날이었으니까.

우산을 받쳐서 스치는 것보단
우산 없 스며드는 편이 더 나았다.

조심스럽다. 늘 먼저 다가오기만을 바랐던 나는 막상 내게 다가오면 또 어쩔 줄 몰랐다. 그렇게 소멸한 관계가 손가락이 다 접히도록 쌓여가니 다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사랑은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앞으로 해낼 것에 대하여, 내가 앞으로 사랑할 것에 대하여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뻔한 결말의 두려움을 없애는 게 아닐 것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바꿔볼 용기를 내는 일일 테다.

잠시 젖은 옷을 말리면서 맨몸이 되었을 때 나는 과거의 상처들을 쳐다보았다. 새살이 언제 돋았을까. 흔적은 희미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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