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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Oct 23. 2016

우리반 김준O이 전교어린이회장에 나간 이야기

실화 감성에세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에 만화가가 꿈이었던 내가 야매(?)참모로 출마 포스터에 만화를 그려주기도 했던 우리반 햇빛약국 아들내미 김준O이 전교어린이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해보려 한다.


차라리 내게 출마원고를 봐달라고 했다면 더 감성적인 연설을 할 수 있었을테지만, 그 애는 내 도움이 없이도 그런 전략과 전술에 능한 부모님이 뒤에 계셨던 것 같다.(끝까지 읽어보시라.)


나야 초등학교 내내 1학년 12월달 딱 한번 엄마가 대신 해주신 겨울방학 숙제를 잘해왔다는 명분으로 1학년 6반 '반장'한번 한 것이 전부였으며 그마저 우리 부모님, 특히 우리 엄마의 입김(애 기좀 살려줍시다잉)이 작용했음은 훗날에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근데 김준O이는 달랐다. 이미 또래집단이 분명해진 고학년임에도 출마선언 직후 엄청난 세력을 끌어모았다. 공부를 잘했긴 했지만 딱히 친구가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던 애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아이들을 결집시킨 것은 그 아이의 부모님의 공이 컸다고 본다. 그 가물가물한 기억은 생략하고,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거다.


그때 파격적인 포스터하나가 표심을 자극했다고 보는데 그것은 가히 감성의 끝, 햇빛약국 네이밍에서부터 풍기는 뒤에 바탕이 된 그 아이 부모님의 감성전략의 냄새.


'이전의 김준O은 죽었습니다.'


부모님 허락없이는 아니 '어른이'들의 구체적 아이디어가 아니고서야 이런 발칙한 문구에 영정사진 컨셉을 어찌 중앙계단 복도에 떡하니 내놓을 수 있겠는가.


포스터에 검은 띠 두 갈래와 함께 흑백사진으로 처리한 영정사진 컨셉.(순수초딩에겐 충격과 공포)

뒤이어진 기가 막힌 카피-


'새롭게 태어난 김준O이 새로운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이른바 '사즉생의 각오'다.

그 전교어린이회장 경력 한번이 '리더'느낌을 확 들게 하고 자존감 상승과 함께 아마도 그 아이 부모님 생각에 아들의 진로(방향)를 정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생각해보면 전교어린이회장이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그냥 좀 멋져보였을뿐)


그 애는 당선됐고, 부모는 선거를 도운 모든 참모들에게 짜장면을 쐈지만 난 그당시에도 그런 댓가를 받는 게 정치적(?)으로 마뜩치 않아서 참모중에서 혼자 그 자리에 안 갔다. (그 아이를 잠시 도와준 이유는 크게 인성이 못 되지 않은 우리반아이라는 점에서 발현된 초딩의 의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학교를 뒷문으로 혼자 빠져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학교란 다닐 곳이 못 돼'


몇 달 후, 난 중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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