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감성에세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에 만화가가 꿈이었던 내가 야매(?)참모로 출마 포스터에 만화를 그려주기도 했던 우리반 햇빛약국 아들내미 김준O이 전교어린이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해보려 한다.
차라리 내게 출마원고를 봐달라고 했다면 더 감성적인 연설을 할 수 있었을테지만, 그 애는 내 도움이 없이도 그런 전략과 전술에 능한 부모님이 뒤에 계셨던 것 같다.(끝까지 읽어보시라.)
나야 초등학교 내내 1학년 12월달 딱 한번 엄마가 대신 해주신 겨울방학 숙제를 잘해왔다는 명분으로 1학년 6반 '반장'한번 한 것이 전부였으며 그마저 우리 부모님, 특히 우리 엄마의 입김(애 기좀 살려줍시다잉)이 작용했음은 훗날에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근데 김준O이는 달랐다. 이미 또래집단이 분명해진 고학년임에도 출마선언 직후 엄청난 세력을 끌어모았다. 공부를 잘했긴 했지만 딱히 친구가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던 애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아이들을 결집시킨 것은 그 아이의 부모님의 공이 컸다고 본다. 그 가물가물한 기억은 생략하고,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거다.
그때 파격적인 포스터하나가 표심을 자극했다고 보는데 그것은 가히 감성의 끝, 햇빛약국 네이밍에서부터 풍기는 뒤에 바탕이 된 그 아이 부모님의 감성전략의 냄새.
'이전의 김준O은 죽었습니다.'
부모님 허락없이는 아니 '어른이'들의 구체적 아이디어가 아니고서야 이런 발칙한 문구에 영정사진 컨셉을 어찌 중앙계단 복도에 떡하니 내놓을 수 있겠는가.
포스터에 검은 띠 두 갈래와 함께 흑백사진으로 처리한 영정사진 컨셉.(순수초딩에겐 충격과 공포)
뒤이어진 기가 막힌 카피-
'새롭게 태어난 김준O이 새로운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이른바 '사즉생의 각오'다.
그 전교어린이회장 경력 한번이 '리더'느낌을 확 들게 하고 자존감 상승과 함께 아마도 그 아이 부모님 생각에 아들의 진로(방향)를 정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생각해보면 전교어린이회장이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그냥 좀 멋져보였을뿐)
그 애는 당선됐고, 부모는 선거를 도운 모든 참모들에게 짜장면을 쐈지만 난 그당시에도 그런 댓가를 받는 게 정치적(?)으로 마뜩치 않아서 참모중에서 혼자 그 자리에 안 갔다. (그 아이를 잠시 도와준 이유는 크게 인성이 못 되지 않은 우리반아이라는 점에서 발현된 초딩의 의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학교를 뒷문으로 혼자 빠져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학교란 다닐 곳이 못 돼'
몇 달 후, 난 중학교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