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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an 08. 2017

내가 신나는 일

서른즈음에 YOLO LIFE와 노후대비의 모순

처음 해본 건데 진심어린 칭찬으로 인정을 받으면 꽤 오랫동안 그 신나는 기분을 잊을 수 없게 된다. 그건 성장하면서 점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되거나 내가 (자신있게)잘하는 일이 된다.


다만 서른이 넘고나서가 문제다.

이것이 날 먹여사는 일, 즉 생계를 보장하는 일까진 아니란 것을 알게 될 때, 혹은 부모나 친척이 '이제 너도 안정적인 것을 해야 하지 않겠니'하며 매도하는 분위기가 잦아질 때,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신나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여기에서부터 피부로 와닿기 시작한다. 내가 신나 하는 것을 원망하게 된다. 즐길 수 있는 취미와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직업을 구분해야 하는 자신에게 그만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적당히 사람을 꾀고 나를 그럴듯하게 부풀리면 돈이야 살만큼 벌 수 있겠지만 그때부터 신나는 일은 사라지고 순수했던 하나의 인간은 없어지는 것. 신나게 돈을 버는 건 처음부터 지속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퇴사 후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곤 한다. 올해 다른 무언가에 필히 도전하고 멋지게 시작이라는 성과를 거둘 열정 가득한 나라는 걸 스스로가 잘 알지만 과연 내가 신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많은 돈을 벌면서 동시에 일도 신나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고민은 머물러 있다. 정답은 없다. 순간을 신나게 살며 약간의 고통을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유지하는 체계가 그 물음에 가장 나은 답으로 실행할 미래인 것만은 분명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새로운 시작에서 인정을 받았을 때 또 무한 반복하는 건 아닐 지 하는 것. 그 무엇도 보상받지 못할 때 '덕질'만은 보상을 받으리라는 믿음 하나로 꾸준히 미쳐야 사는 세상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누가 뭐래도 내 삶이니까 나는 한다. 자유로운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다. 새로운 시작의 반복과 동시에 덕질 하나에 파고드는 자세, 그것이 서른즈음의 내 욜로라이프에 모순한 노후대비가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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