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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an 20. 2017

외롭지 않아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글을 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 글로 쓴 적이 있다. 사실 사회화가 필수인 세상에서 부적응자 코스프레를 하는 거 같아서 무슨 자랑도 아닌 말을 하느냐고 자기검열이 되기도 하는데, 이내 뭐 어떤가 세상은 당당히 자신을 말하고 사는 것이다-하고 합리화한다.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만년 작가지망생이니 만큼 본인의 이미지 생각을 하긴 해야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고 작가 중에는 이런 성질을 가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돈과 관련하게 되면 세상 피곤해진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돈이 필요한', '돈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숙명을 가진 존재가 나는 못마땅한 것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겨우'라면 겨우의 숫자이다. 한때는 정말 하루에 열 명도 안되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최소 몇 천 여명이 내 글을 하루에 읽는다. 플랫폼에 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꾸준함의 결과이다. 문제는 내 글이 '작가의 글'이라고 '대한민국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첫째는 돈의 보상을 못 받는 곳에 글쓰기를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대한민국 공식적 문단계의 수준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공식적으로 내린 결론은? 맞다. 나는 이제 작가 행세를 접어야만 한다. 허무한 연명이다. '작가님'이라는 달콤한 호칭때문에 발악하고 사는 것이다. 평생 책만 읽고 글만 쓰면서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그 소리 자체가 배부른 소리다. 철 없는 소리다.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 간다. 뭣이 중헌지 모르겠고, 무조건 다 좋다고만 생각한다. 냉철하게 기다-아니다를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사실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험 차이다. 촉은 경험에서 온다. 나는 촉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연애도 번번히 실패했다. 사람을 알아볼 줄 모르기도 하고, 내 감정을 이기적으로 가져오지 못하기도 해서 늘 손해를 보다가 상처만 받고 끝난다. 사랑에 있어 상처는 당연하지만 문제는 사랑이 실체가 없는 것이란 사실에 있다. 내가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람 자체가 나쁘다거나 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에 타인 역시 신뢰할 수 없는 내면의 문제로부터 방어기제가 생겨나는데 있다.


그저 오늘도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글을 쓸 뿐이다. 이런 나를 조금만 멀리 떨어져 보면 참 외로운 친구다. 나에게 타인이란 참 귀찮은 존재이다. 외롭다는 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면서 애를 써야 하는 건 나로도 족하다. 그저 월세 낼 돈만 있고, 라면 먹을 돈만 있으면 그냥 저냥 살고 싶다. 이것이 삶의 의욕이 없는 인간상인 걸까?

80만원. 그거면 충분하다. 딱히 미래는 없다.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카페가 좋지만 집이라는 공간도 잘만 꾸며놓으면 돈 안나가게 살 수 있다. 집에서 죽치고 앉아 책만 읽고 글만 쓰다가 아주 가끔씩 마음맞는 사람과 커피 한 잔 정도만 하면서 살고 싶다. 책을 써서 딱 한 달에 80만원 이상만 걱정없이 버는 것이 내 목표다.


그리고 오늘 복싱을 등록했는데, 세상 밖에 나오는 건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 필사모임도 (주관)하긴 한다. 그것 역시 3월까지만 하고 더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에너지로 따지면 나를 자세히 모르는 무작위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가지고 모임에서 정해준 룰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도록 유도(진행)하고 약간의 피드백과 적절한 리액션을 하는 것은 소모가 크지 않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 시간과 신경을 상당히 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단점이다. 버틸 수는 있으나 오래 즐길 수는 없다.


모임이라는 것의 매력이 있어서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볼까도 생각하지만, 역시 귀찮은 작업이다. 일이 되는 순간 어느 정도 물질적 보상이 뒤 따르지 않으면 정신적 보상만 있을 때는 사회적 위치가 상당히 허무해진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와 같은 대중적으로 팔리는 작품을 내고 인정을 받아서 그 뒤에 쓰고 싶은 에세이를 쓰고, 하고 싶은 강연, 방송 등으로 부수익을 낼 것인가, 지금처럼 스펙도 없이 살 것인가.


물론 선택은 전자로 한다. 근데 선택을 한 순간부터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능력과 노력의 영역이 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은 현실적으로 말해 '취미생활'에 불과하다. 정신차리고 어서 취업을 해야만 한다(아니면 책으로 대박이 나야겠지) 80만원 이상의 돈이 작가로서 벌리려면 말이다. 기반의 마련 차원에서.


다만 매일 글을 쓰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장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좋은 작품을 내는 것이다. 문단에서 혹은 독자로부터 인정받는 작품이 언젠가라도 많이 팔려야만 한다. 단기적으로는 어디라도 취업을 해서 소위 말하는 '사람구실 '을 하고 살아야 한다. '사람구실'이란 말은 현 부모세대의 잔소리로부터 나온 시쳇말이다.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과연 현재의 기준에서 남들 하는 만큼 하지 못하면 사람도 아닌 걸까? 물론 소설이든 자기계발서든 인정을 받아도 돈이 안 될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은 글만 써서는 돈을 벌고 살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하루 빨리 '작가님'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일까?


글을 올릴 때 마음은 하나이다. 댓글이나 좋아요도 필요없다. 읽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고립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 인기척만 있으면 된다. 더 가까이 부대끼고 싶은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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