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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Feb 08. 2017

힘드니까 네 글이 보이더라

고맙다 친구야, 고마워요 독자 여러분

내겐 베프라고 부를 수 있는 딱 한 명의 친구가 있다.


아니, 어쩌면 내 친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30대가 넘은 현 시점에선 그 친구가 유일한 거 같다. 그래서 그 친구와는 비즈니스 관계로는 엮이고 싶지 않다. 영원히 고딩친구로서 죽을 때까지 함께이고 싶다.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야겠지.


그 친구로 말할 거 같으면 내가 늘 자랑하고 다니는 '공부 좀 했던' 친구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이었고 지역 1등도 했으니 말 다했지. 난 전교 꼴찌를 찍어본 적도 있다. 모의고사 OMR카드에 마시멜로 토끼를 그려넣었을 때 그랬다. 태권도부를 제쳤다. 전교생이 몇 명이었는지는 나의 석차가 정확히 알려주었다.


아무튼 전교 꼴찌가 전교 1등과 어떤 인연이 닿았는지,

만날 친구도 없이 혼자, 점심시간에 학교 지하 구내 식당에서 2,500원짜리 돈까스를 먹고 있을 때 먼저 "넌 왜 만날 혼자 밥먹냐?" 하며 다가온, 돈까스 한쪽에 나온 '옥수수콘'을 늘 뺏어 먹던 그 친구가 알고보니 아버지끼리도 서로 같은 직장 동료 출신이고, 등등 촘촘히 엮어 있었다.


사실 공부를 잘하긴 했겠지만 그렇게나 공부를 잘하는 지까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늘 친구 자랑을 한다. 내 친구 중 가장 똑똑한 친구라고.(사실이다. 견줄만한 친구 자체가 없으니까 ㅎㅎㅎ)

내가 책 <나에게 하는 말>을 출간했을 때 나 몰래 책을 열 권 이상 사서 북콘서트 때 싸인 해달라고 한 다음 친구들에게 뿌렸다. 응? 이거 사재기인가; 나는 몰랐으니 아닌 걸로. 친구 친척 지인들에게 서점에 유통등록이 되지 않은 책을 별개로 출판사에서 받아서 개인적으로 선물은 했지만 사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 친구에게도 선물로 주려던 참이었는데 진짜 요즘말로 '개'감동이었다.


암튼 그런 친구가 있다. 나에겐.

우리나라 탑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 친구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다.

논리가 늘 부족하고 감성을 좇아 살던 내 성향과 정 반대라면 반대다.(- 라고 최근까지 믿고 있었다)

늘 나의 감성적인 면모와 다양한 경험사례들에 대해서 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멋진 놈이고 잘 될 놈이라며 자주 내 기분을 업시켜주던 친구.


근데 역시 그 친구와는 어떤 감성코드가 맞아 떨어졌기에 10대서 부터 30대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생각한 결정적 계기가 얼마전 있었다. 늘 강인하고 현명하게 위기를 헤쳐나가던 그 친구가 심적으로 힘들었었나보다. 처음으로 나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


야, 힘드니까 네 글이 눈에 보이더라.


10년지기도 훌쩍 넘은 그 친구로부터 처음 들었던 내 글에 대한 공감 피드백이었다. 주장이 확고해서 직설을 하거나 질문을 던져서 내가 스스로 생각의 문을 열게 하거나 혹은 경청하고 침묵을 선택할 뿐, 빈 말을 하는 녀석이 아니기에, 난 바로 답장을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조만간 술 한잔 하자'고. '너는 늘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해내고 말 거'라며 진심으로 톡을 날렸다. 그렇게 나름의 위로를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난 지금,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출판사 관계자들이 내게 연락이 없다는 건 내 글이 눈에 들어올 만큼 힘들지 않아서가 아닐까 ㅎㅎ

그 분들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글이 20대 여성독자와 30대 초반에 최적화 된 감성이란 것도 알기에 ..라고 출판사 컨택이 많지 않은 현실을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고)합리화 할 뿐이다.


SNS에서 몇몇 독자들은 자칭 팬이라고 해주시는 분도 있고 꾸준히 1년 넘게 글을 올리다보니 좋아해주시는 분, 극단적인 생각을 거두게 되었다는 분, 등등의 피드백을 많이 받게 된다. (메시지로 구구절절 장문의 사연을 털어놓으시는 분, 헤어진 사람이 내 글의 독자라며 자신의 마음을 글로 대신 좀 써서 올려달라고 요청하시는 분 하며, 고민을 들어달라고 새벽에 메시지를 주시는 분들, 고맙다며 힘들었는데 꼭 지금의 자신에게 한 말처럼 위로가 되었다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등등....)

그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존감이 잠시 낮아진 시기를 겪고 있거나, 상처에 허덕이고 있거나 힘이 되는 응원이 필요한 분들이란 거다. 어떤 순간과 시기에 내 글귀가 '필요한' 분들이다. 그래서 평소 같았음 그냥 휙 스치고 말았을 내 글이 마침 '보인' 분들.

어떻게 보면 내 글은 그 순간이나 시기가 지나면 소용없어지는, 다소 유치해져 보일 수도 있는 인생 전체를 따져봤을 때는 아주 찰나의 공감글귀인 듯 하다.

어렸을 때(중학교 시절) 나의 우상이었고 (지금도 여전한 또 영원한 나의 아이돌(우상)인) 신성우 라는 가수의 공식팬카페 공동운영자가 되면서, 지금까지도 신성우 형님의 인터뷰를 빠짐없이 다 챙겨보고 있는데 내가 닮고자 하는 것 중 단 하나를 이루었다고 자부한다.


외모? 는 당연히 아니고, 노래? 도 당연히 아니다. 인기? 도 아니다 ㅎㅎ

단 하나, 그의 과거 인터뷰 중 '누군가 제 노래를 듣고 삶을 다시 살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음악을 계속 해야겠다. 음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와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토씨는 다를 수 있음)


나에게도 역시 내가 쓴 글을 읽고서 '삶을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그렇게 계속 살고 있다는 피드백을 몇 차례 받아보는 경험이 누적됐다. 그러다보니 가족 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무명작가로서 서점에 갔을 때, 통장에 찍힌 인세를 볼 때, 불현듯 내가 이러려고 책을 냈나 자괴감이 들다가도 인지도나 물질적인 것보다 더 소중한 걸 얻었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라고 다짐 또 다짐하며 미소를 짓게 된다.


사명감 내지는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친구가 했던 오늘 글의 제목(힘드니까 네 글이 보이더라)는 말은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도 친구보다 몇 달 전, 거의 똑같은 문장의 메시지가 오가다가  '내 글은 힘들어서 보인 거다, 외면할 수 없어서'라는 이유로 책을 선물로 전달해준 적이 있다. 이런 대목에서 나는 무명작가라고 너무 좌절할 필요가 없다라는 걸 깨달았다. 의사가 환자가 많기를 바라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하다랄까.

하지만 기왕에 필요하면 내 글을 보고 힘을 냈으면 하는 거다. 사연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눈팅만 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유명해지지 않는 것에 한 몫 할테지만, 괜찮다. 여기에서 안주해서도 안 되겠지만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바라진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글귀로서 내 글이 잠깐의 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생애 첫 책이었던(지금은 절판된)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라는 책(e-Book)은 단돈 1,500원이었다. 얼마전 (100% 대가성 요구 없는)글귀 기부로 참여했던 버킷북 프로젝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을 다 내게로 오라고 할 처지는 나도 아니기에 그들이 내 글귀를 보고 위로받았다고 피드백 해줄 때마다 나는 더 큰 위로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존재하는 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자존감 동반상승이지.


고마운 상호작용이다.

아찔한 진자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재 독자들에게 다시 삶에 있어 설레게 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가급적이면 매일.




사진은 전부 저작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이미지들로, 포털 검색을 통해 퍼왔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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