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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아일보 Aug 11. 2016

기다리는 시간,
기다리는 연습하기

'제발' 아이에게 스마트폰 주지 마세요

여섯 살 남자아이와 엄마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내가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엄마랑 원장님이랑 얘기를 좀 해야 해. ○○이는 좀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아이는 곧 엄마 쪽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엄마는 힐끔 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안 된다고 했잖아”  


아이는 바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짜증은 금세 떼로 바뀌었다. 엄마는 몹시 난처해하며 “얘가 참. 안 돼, 오늘은 안 된다니까…” 한다.


아이의 떼는 잦아들 줄 몰랐다. 


안절부절못하던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럼, 딱 5분만 해야 돼”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잠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단호하게 “어머님, 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얼른 스마트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는 “아, 왜∼요∼?”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원장님은 기다릴 때 스마트폰 못 주게 해.” 


아이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뺄 대로 빼며 다리를 쭉 뻗어 진료실 책상을 발로 탁탁 쳤다. 


“그럼, 난 어떡하라고요!” 여전히 화가 많이 난 목소리다. 

“밖에 네가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많아. 만화를 보여줄 수도 있어.” 아이는 싫다고 했다. 

“그럼 책을 봐. 그림책도 많아. 장난감도 많고. 다른 선생님들이 그림 그리기나 종이접기를 해줄 수도 있어.” 


아이는 다 싫다고 했다. 


“그럼, 그냥 기다려.” 


아이는 처음에는 퉁탕퉁탕 화를 내기는 했으나 결국 스마트폰 없이 기다리다 갔다. 


요즘 지하철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병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린아이가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본다. 어린아이일수록 두뇌는 물론이고 여러 발달 면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아이는 늘어만 간다. 



부모들의 변명은 항상 똑같다. “안 주면 난리가 나서….” 

정말 그럴까? 아니다. 

그보다는 스마트폰 없이 기다리는 연습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혀를 찬다. 


“요즘 아이들은 반응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충동적이다, 산만하다, 조금만 지루해도 못 견딘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부모가 침묵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을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은 아이가 유별나서가 아니다. 스마트폰 없이 기다리는 연습을 성공적으로 해보지 않은 탓이다. 


이 글을 읽은 이 순간부터 기다리는 동안, 제발 아이에게 스마트폰 좀 주지 말자. 아이가 울고불고 고집을 피울 수도 있다. 그래도 안 주면 된다. 그 대신 재밌게 놀아주면 된다. 



초등 저학년 이하는 부모가 정말 재미있게 놀아 주면 의외로 쉽게 스마트폰을 잊는다. 물론 한 번의 경험으로 잊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없이 기다려본 경험이 서너 번만 쌓여도 아이는 더이상 떼를 부리지 않는다.

지금 이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스마트폰 같은 도구가 없으면 혼자서는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기다리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한다. 몸에 배어야 자연스럽게 나온다.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면, 아이가 아무리 심심하다고 해도 “기다리는 거야”라고 말하자. 그리고 같이 기다려주자. 너무 힘들어하면 좀 도와줄 수는 있다. 이때 도와주는 것은 “그럼, 스마트폰 5분만 하고 기다리는 거야”가 아니다.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벌이 아니다. 부모가 느긋하고 편안하게 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아이도 기다리는 것을 ‘짜증 나고 지루한 시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몇 가지 팁을 주자면, 기다리는 장소가 자동차 안과 같이 다른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부모의 어릴 적 이야기, 아이의 어릴 적 이야기, 동요 부르기, 끝말잇기 등을 할 수 있다. 좀 더 조용히 노는 방법으로는 말 참기 놀이와 눈(目)싸움, 눈빛이나 표정으로 말하기, 손가락 놀이도 있다. 


떠들 수 없는 곳이라면 조용함 속에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있어 보게 한다. 가만히 주변 사물이나 사람을 관찰하고, 하늘도 보고 발밑도 보고 공기도 느끼면서 기다려보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아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부모가 편안한 표정으로

 그런 장소에서 그렇게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아이도 그냥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줄 안다.

 눈에 익고 몸에 배기 때문이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진실로 아이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게 하고 싶다면

 부모뿐 아니라 모든 어른이

 필요 이상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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