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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Nov 16. 2021

이끼와 함께

[작은 친구들 9호] 으네제인장의 추천도서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털복숭이 작은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입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어른이 된 후로 땅 위의 풀보다는 머리 위 나무를 바라볼 일이 더 많아졌다. 땅 위의 꽃보다는 나무에 달린 꽃이 더 익숙하다. 어릴 때만 해도 내 눈은 땅 위의 풀에 더 익숙했다. 꽃도, 벌레도, 열매도 땅에 가까운 것들과 더 친했다. 그때만 해도 이끼는 자주 만나는 식물 친구였다. 가끔은 벽과 땅 위의 이끼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이끼 카펫을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쓰다듬기도 했다. 그러나 키가 자라고, 어른이 되면서 이끼는 내 시야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끼를 인테리어 용품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모스는 공기 정화, 천연가습기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벽 장식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스칸디나비아 모스, 즉 순록이끼로 불리는 레인디어 모스는 이끼가 아닌 지의류라고 한다(이끼와 지의류는 다른 엄연히 다른 종류다). 스칸디나비아 모스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지의류와 꽃식물, 그리고 조류와 석송류를 통틀어 이끼로 착각하여 부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끼는 과연 무엇일까. 내가 어릴적 보았던 이끼는 과연 이끼가 맞을까.


이끼란, 기초적인 줄기와 잎으로만 된 가장 단순한 식물이자 가장 원시적인 육생 식물이라고 한다. 이 단순하고 오래된 식물은 모든 육지 식물의 첫 시작이자,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물에서 육지로 올라올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도화선이 되어주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신기하게도 발밑의 이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덕에 땅 위의 이끼와 사이가 좋은 어린이들은 이미 매일 같이 보도블럭 구석의 이끼를 발로 차 땅에서 분리해두었다.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이끼 덩어리들이 이제는 매일 발견되면서 때로는 어린이들에게 천덕꾸러기 장난감 취급을 받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보이기 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던 이끼가 시선을 주고 관심을 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안타깝게 느껴지다니.


도시에 사는 어른들은 이끼를 매일 같이 만나고도 그 존재를 모르고 지낸다. 눈 앞에 있다고 해서 매일 본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보고 싶은 것만 볼 때가 많다. 책의 앞 부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겉만 훑어보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중간 척도에서 우리 시야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시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이라 할 지라도 길을 가다 마주치는 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지거나, 꽃의 이름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요즘들어 매일같이 이끼를 보다보니 이끼의 이름도 궁금해졌고 책을 통해 ‘은이끼’일지도 모르겠다는 힌트를 얻었다.


‘지구 모든 곳을 돌아다니는 대기 플랑크톤, 포자 구름, 꽃가루 안에 항상 은이끼 포자가 있다. 당신은 밖에서 걸을 때마다 보도블록 틈에 서식하는 수백만 개의 은이끼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밟았을 것이다.’


라고 하니 말이다. 알고 보니 이끼는 수분이 적은 곳에서도,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수분이 98%까지 사라진 상태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도 질기다고 한다. 폐기물더미 틈에서도 이끼는 터를 잡고 살아가며, 놀랍게도 이끼가 사는 곳에서는 다른 식물들도 자라날 수 있다고 한다. 이끼가 없는 폐기물에서는 살 수 없지만 이끼가 있는 곳에서는 다른 식물도 살 수 있다니. 그 현상을 두고 작가는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그런 이끼도 살 수 없는 환경이 있다고 한다. 바로 대기오염이 심한 곳이다. 이끼와 지의류는 대기 오염에 취약하여 아무리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는 이끼라고 해도 공기가 안 좋은 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한다. 도심 속 가로수의 표면에 낀 이끼나 보도블록 틈 은이끼는 그래도 그곳의 공기가 나쁘지 않다는 걸 나타내지만 만약 가로수의 표면에 매끈하거나 보도블록 틈에서 이끼를 찾을 수 없다면 그곳의 공기는 아주 나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끼의 잠재성, 아니 이끼는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인간은 아직 모르는 잠재성에 대해 생각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존망의 경계에 선 숲의 생명, 지구 환경 회복의 비밀을 어쩌면 이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에서 처음 육지로 나아간 용감하고 도전적인 식물이자,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이끼. 어느 곳에서나 살 수 있지만 그런 이끼조차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드는 인간의 무모함 또한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고대 동물들을 통해 동물의 역사와 비밀을 찾듯 식물의 비밀은, 아니 육지 생명의 비밀은 어쩌면 이끼가 가지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으네제인장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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