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색 돌멩이 Sep 10. 2024

너의 꽃말

04. 알리움

'내가 불을 켜고 나갔었나?'


복도식 아파트인 나의 집. 한나절을 밖에 있다가 돌아왔다.

터벅터벅. 멀찍이 떨어진 집에 다가가자 창 안으로 보이는 불 켜진 집 안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너 일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그게..'


어이없고 통탄스러운 생각이 짧게 스쳤다.

그래, 너라면 언제든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매 달 허리띠를 조르며 아껴 살아야 하는 나와 우리에게는 이 좁은 집이 꿈만 같은 공간이었다.

당연히 현관문 비밀번호도 너와 내가 담긴 숫자로 채워져 있었고.


나는 가능한 내 모든 것을 너와 공유하고 싶어 했었다.

나의 부모님과 동생, 친구들. 내가 애정하는 것들과 작은 취미들까지도.


너는 우리의 마지막까지 너의 전부를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이 응당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우린 그저 연애 중일뿐이니까. 괜찮아.


그런 우리가 끝을 맺을 때

내 집에 남아있는 너의 물건들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는 내 질문에

필요한 것들이 있으니 택배로 보내달라고 답을 했던 너.


그런데 참 웃픈 것이.

나는 너희 집 주소조차 모르는 사람이어서 말이지.

나는 그 모르니 알려달라고 할 힘조차 없었어서 말이지.


이제는.

네가 없는 내 하루도 이제는 썩 괜찮아졌다.

네가 쓰던 샴푸, 포스트잇, 색색의 형광펜들과 마주칠 때도 말이야.  


건 그런데.

대체 너와 관련된 물건들을 보이는 대로 찢고 버려도 남아있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왜 항상 이성과 감정은 다르게 흐르는 걸까.

언제쯤이면 이런 황당한 기다림이 멈춰지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너의 꽃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