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을 켜고 나갔었나?'
복도식 아파트인 나의 집. 한나절을 밖에 있다가 돌아왔다.
터벅터벅. 멀찍이 떨어진 집에 다가가자 창 안으로 보이는 불 켜진 집 안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너 일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그게..'
어이없고 통탄스러운 생각이 짧게 스쳤다.
그래, 너라면 언제든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매 달 허리띠를 조르며 아껴 살아야 하는 나와 우리에게는 이 좁은 집이 꿈만 같은 공간이었다.
당연히 현관문 비밀번호도 너와 내가 담긴 숫자로 채워져 있었고.
나는 가능한 내 모든 것을 너와 공유하고 싶어 했었다.
나의 부모님과 동생, 친구들. 내가 애정하는 것들과 작은 취미들까지도.
너는 우리의 마지막까지 너의 전부를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이 응당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우린 그저 연애 중일뿐이니까. 괜찮아.
그런 우리가 끝을 맺을 때
내 집에 남아있는 너의 물건들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는 내 질문에
필요한 것들이 있으니 택배로 보내달라고 답을 했던 너.
그런데 참 웃픈 것이.
나는 너희 집 주소조차 모르는 사람이어서 말이지.
나는 그걸 모르니 알려달라고 할 힘조차 없었어서 말이지.
이제는.
네가 없는 내 하루도 이제는 썩 괜찮아졌다.
네가 쓰던 샴푸, 포스트잇, 색색의 형광펜들과 마주칠 때도 말이야.
그건 그런데.
대체 너와 관련된 물건들을 보이는 대로 찢고 버려도 남아있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왜 항상 이성과 감정은 다르게 흐르는 걸까.
언제쯤이면 이런 황당한 기다림이 멈춰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