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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Jun 30. 2023

이립(而立)

 사람들은 30살을 이립(而立)이라고 부른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30살. 대한민국에서 30살이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하나둘씩 결혼을 하거나 가정을 꾸릴 나이에 해당한다. 나에게 30살은 어떤 의미였을까? 파란만장한 20대를 청산하고, 사회의 질서에 통용되는 순간? 그 당시에는 보란 듯이 누구보다 잘살고 싶었다. 돈은 이만큼 모아놓고, 결혼 준비는 저만큼 하며, 회사에서 탄탄대로를 걷는 내 모습을 생각했다. 잘살고 있다고, 나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퇴사를 한 이후부터, 나는 사회 이곳저곳에도 속하지 않는 부랑자처럼 행동했다.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그런 수도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A는 지금 이러고 있을텐데… B는 이만큼 성취했을텐데… 

 문득 머릿속에서 책에서 보았던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인생이란 우리가 태어난 이래로 자아를 탐색하고, 자기(Self)를 찾는 여정이라는 칼 융의 말이. 그랬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냐 하는 ‘방향’에 관한 문제였다. 인생의 방향에 관한 문제 말이다.


 내 인생의 방향을 어디로 설정할 것인가? 어떤 항로로 망망대해라는 세상 속에서 내 인생이란 배를 움직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 필사적이자 아주 중대한 문제였다. 그 당시에 내 배가 나아 가야 할 길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만나 침몰한 것처럼, 세상이란 풍파 때문에 내 배도 그렇게 부서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회생활은 너무나 험난했고, 이 세상에 내가 속할 곳은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만 머릿속을 가득 맴돌았다. 


 그때 당시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삶의 의미. 도대체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의 질서로 돌아갈 때까지,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수많은 것들을 보며, 또 수많은 것들을 품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축복과도 같은 과정이었지만, 나는 이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통과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나를 받아 들여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우울증과 두통을 해소하고자, 지식 탐구에 파고들었다. 톨스토이가 수시로 자신을 괴롭히는 자살 충동과 우울증을 해소하고자 다양한 지식을 독파했듯이, 나에게도 그러한 과정이 필요했다. 나는 집 근처 도서관에 매일 들러,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도서들을 탐독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사르트르와 하이데거 같은 실존주의 철학, 힌두교의 서적들, 불교의 화엄경, 성경, 심리학, 양자역학, 천문학, 프로이트와 융에 이르는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도서들을 읽었다. 명령을 하달받은 군인들이 죽기 살기로 전장에 뛰어드는 것처럼,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독서를 했다. 시간이 흘렀고, 그 분야의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들처럼 지식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은 아는 체 할 수 있는 지식이 생겼다. 나는 내 상태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때 다다른 결론은 이러했다. 나의 내적인 고민을 해소할 방향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세상의 지식을 흡수하는 것과 영 거리가 멀다는 것. 길을 잘못 찾은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만으로 나의 번뇌를 해결할 순 없었다.

      

 나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 필요했다. 과학이 입증시켜주지 못하는 문제들에서부터 나의 내면 끝까지 탐색해야 이를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나는 그때부터 명상과 만트라 암송에 몰두했다. 만트라란 성스러운 음절이나 단어로서, 영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나는 새롭게 공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면의 공사. 내 자아 탐구를 위한 마음의 공사를 말이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내면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미래의 즐거움보다 우선 ‘현존(現存)’을 먼저 생각했다. 과거와 미래는 잠시 제쳐두고, 현재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내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 현재 내게 필요한 것. 그리고 현재 내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동시에 내면과의 교류를 통해 은연중에 떠오르는 번뇌를 해소했다. 그것이 지적 호기심이든, 세상의 원리에 대한 미스터리든 궁극적인 의문은 나로 시작해서 나에게서 끝이 나야만 했다.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에 몰두하여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고뇌하는 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지식을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철학적인 사색 이후로, 내게는 세상이 요구하는 사항들이 삶의 우선순위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대신에 새로운 사항들이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그때 당시 내게 떠오른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아직 풀리지 않은 비밀들. 존재와 무(無)를 가르는 경계, 생과 사의 갈림길,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도(道), 만물을 구성하는 세상의 단일한 원리 등 형이상학적이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세상의 비밀들이 나를 움직였다. 매일 밤 잠들기 직전, 명상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책장은 어느덧 마음공부에 관한 서적들과 종교에 관한 도서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내면과 하나가 되어갔다. 내 길을 찾은 것만 같았다. 나는 조금씩 살아 있음을 느꼈다. 드디어 숨을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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