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자린이 부부 첫 자전거 여행기
오랜만에 찾은 제주도는 벌써 봄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3월 중순이지만 바람에는 봄기운이 느껴졌고, 햇살이 닿는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푸릇푸릇 초록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른 아침 비행기로 제주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을 찾아갔다. 와이프가 미리 예약해 놓은 자전거를 찾은 뒤, 주인장으로부터 몇 가지 주의사항(펑크가 나거나, 자전거에 문제가 생길 때 연락하면 언제든 달려오겠다는 등등)을 들은 뒤, 짐을 최소하고 나머지 짐은 그곳에 맡겼다. 그런 다음 제주환상 자전거길의 출발점인 용두암 인증센터로 갔다. 이곳에서 출발 인증도장을 꽝 찍은 뒤, 설레는 마음으로 환상 자전거길 완주를 목표로 출발을 했다. 오전 10시경이었다.
자료 출처 : 우리 강 이용 도우미 홈페이지 화면 캡처
https://www.riverguide.go.kr/kor/cycleIndex.do?menuIdx=377
제주는 역시 좋았다. 자전거를 타며 천천히 그리고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서 느끼는 제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바다는 더 에메랄드빛으로 빛났고 자전거를 타면서 마시는 공기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했으며 바다 내음은 기분 좋게 비릿했다. 바다의 비릿한 내음은 신선하면 그 비릿한 향이 좋게 느껴지고, 신선하지 않으면 코끝을 찡그리게 만든다. 와이프의 계획에 따르면, 오른편에 해안가를 두고(시계 반대 방향)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그래야만 달리는 방향으로 계속 바다가 펼쳐지게 되고, 또 그 방향이 완만한 내리막길로 이어져서 출발하는 첫날 달리기에 좋다고 한다. 매일 달려야 할 거리는 80km를 목표로 하고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적당히 조절하자고 한다. 첫날은 체력이 가장 좋을 때이니 되도록이면 최대한 많이 달리자고 한다.
첫날 목표는 송악산을 지나서 대략 10km 정도를 더 간 지점을 목표 종착지로 생각하며 달렸다. 바람도 우리의 계획을 반기는지 등 뒤에서 불어주고 있었다. 힘들이지 않고서도 속도가 붙어서 신나게 달렸다. 아내에게 듣던 대로 길도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모든 게 완벽했다. 같이 나란히 달리다 가도 어느 순간 속도감에 스릴을 느끼기 시작한 나는 먼저 앞서 나가며 마음껏 내달리기도 했다. 위험하다며 천천히 달리라는 아내의 잔소리는 못 들은 체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다락쉼터 인증센터를 지나 두 시간쯤 달렸을 때, 허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멈춘 뒤 주위에 있는 맛집을 찾았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에 현 위치를 누르고 주위 음식점들을 검색하니 음식점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제주도까지 와서 여행을 하니 뭔가 특별히 맛집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가장 큰 여행의 목적이 자전거 완주이기에 되도록이면 자전거길 주위에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여 멀리 벗어난 곳은 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에 있는 중국집 ‘수타명가’를 찾아서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제주도는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확진자가 많지 않아서 현지인들은 마스크를 별로 쓰지 않았고, 마스크를 쓴 사람은 전부 관광객으로 보였다. 내부로 들어가니 현지인들이 많아 보였으며 마스크에 헬멧까지 쓰고 들어가니 이목이 집중되는 분위기였다. 왠지 모르게 현지인들의 눈치가 보였다.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냐는 그런 눈길이 느껴졌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장과 짬뽕을 시켜 먹으며 허겁지겁 허기를 달랬다. 자전거를 타다가 먹는 음식은 어떤 음식이든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주변에 있는 카페에 들러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오후에 달려야 할 길을 훑어본 다음,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도로가 해안선을 따라서 있는 구간으로 접어들면서 오른쪽 바다 위로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에메랄드빛 바다 그 위에 하얀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자욱한 안개와 어우러지며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림 같은 풍경들을 모두 눈에 담으려는 욕심에 힐끗힐끗 뒤돌아 보고 또 뒤돌아 보며 송악산을 향해 달렸다. 용두암에서 출발한 지 5시간쯤 지났을 때 세 번째 인증센터인 송악산 인증센터에 다다랐다.
송악산의 겉모습은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구릉 같은 언덕이다. 3월인데도 초록빛으로 펼쳐진 구릉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은 뒤, 송악산과 함께 푸른 바다를 한동안 보다가 왼쪽으로 돌리니 남쪽 태평양 바다를 품은 작은 해변이 나온다. 사계리 해안이다. 작은 해안에 어울리는 작은 항구와 상가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하루를 묵고 갈 것이냐, 좀 더 가다가 묵을 것이냐? 와이프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때가 오후 4시경, 아직 1시간 정도는 더 달릴 시간이 있었다. 첫날은 되도록 많이 달리기로 한 계획대로 더 달리기로 하였다.
송악산을 지나 사계 해안가 끝 지점까지는 순조롭게 달렸다. 그러나 사계리 해안가 끝에서부터는 산방산을 돌아서 가야 하는 구간이었다. 이제까지 달리던 방향과 역방향으로 산방산을 마주 보고 왼쪽으로 크게 돌아 나와야 했다. 바람 방향이 맞바람이다. 게다가 오르막이었다. 이제까지 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바람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오르막도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비스듬한 오르막이 끝없이 계속 이어졌다.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와이프도 힘겹게 뒤에서 올라오고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오늘은 그만 가자고 하고서는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숙박 앱을 켠 뒤 숙소를 검색했다. ‘데일리 호텔’ 앱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적당한 숙소를 찾았다. 아담한 펜션인데 도로에 바로 붙어 있어서 그곳으로 정하고 실시간으로 예약을 하고 갔다.
당시 제주도의 모든 관광지 숙박료는 엄청나게 저렴했다. 이곳은 하룻밤에 37,000원을 주고 투숙했다. 예약을 하고 입금을 하니 주인이 전화로 방 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비대면 체크인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한 뒤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가려 했지만 둘 다 지쳐서 도저히 나갈 힘이 없었다. 특히 아내가 그냥 시켜서 먹자고 하여 배달이 되는 곳을 찾았다. 배달음식으로 영양 보충하기엔 치킨이 최고 아닌가. 치킨과 맥주를 시켰더니 아뿔싸 치킨에 맥주에 배달비까지 포함하니 맙소사 56,000원!! 방값보다 엄청나게 비싼 저녁이 되었다. 이날 먹은 식사가 제주에서 먹은 가장 비싼 식사가 되었다. 어쩌겠나 피로에 게으름이 부른 비용이니 맛있게 먹어줘야지... 샤워와 빨래를 한 뒤, 배달된 치킨과 맥주를 허겁지겁 먹고는 곧장 꿈나라 떨어졌다. 맥주 한 잔에 피곤이 풀리면서 바로 잠들었다. 그렇게 첫날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