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괜찮은 오늘

러너스 스트릿 #1 / RS_007

by runnersst
서울숲 > 블루바틀 성수 > 압구정 양양집 (10.5km)
Cue the music: The Heavy - Curse Me Good + Cool down: 김현철 -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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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오른 복어처럼 정수리 위로 김이 피어오를 땐, 일단 달린다. 보슬비는 운동화와 만나 경쾌한 리듬을 만든다. 뭐가 그렇게 억울했지? 뭐가 그리 섭섭했더라. 곱씹다 보면 딱히 답도 없다. 그마저도 귀찮아질 즈음, 찹찹찹— 운동화만이 공허한 질문들에 규칙적인 대답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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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거세지는 순간, 다운힐을 만난다. 두 팔을 벌리고 신나게 내달리면 갈매기처럼 하늘을 향해 외치게 된다. “끼야아하하—" 오늘의 고민, 그걸로 끝. 서울숲은 자욱한 안개로 나를 맞이한다. “어서 와. 이제 그냥 즐겨.” 연못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연잎은 아련히 떨리고, 날렵한 이파리들은 선선한 바람을 타고 춤을 춘다. 이제 식어버린 마음을 데우러 블루바틀 성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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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지하. 노출 콘크리트 벽 사이로 음악이 낮고 깊게 퍼진다. 서늘한 공기 속, 우두커니 서서 하—깊은숨을 내쉰다. “그래, 오늘은 이런 달팽이집이 필요했어.” 마음껏 웅크릴 수 있는 시간. 지브롤터 한잔의 쓴맛이 감정보다 진하고, 마음보다 깊다.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아직 몸이 덜 괴롭다. 다시 길 위로 나선다. 안개가 걷히고 열기가 스며든다. 이제부터 진짜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시야는 땀으로 흐려지며, 다리는 덜덜 떨린다. 그래, 오늘의 달리기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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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위. 광활한 한강이 묻는다. “그 고민, 그렇게 대단했나?.” 꾸물대는 하늘이 말한다. “그 기분, 그토록 소중했나?.” 툭. 다리 위에 흘려보낸다,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발걸음은 다시 리듬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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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장도 가벼워진다. 뜨끈한 해장국 한 그릇이면 모든 게 리셋된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뜨끈한 해장국을 뚝딱 비운다. 더운 건지 추운 건지 헷갈리는 이 경계, 마치 오늘의 마음 온도 같다. 그래, 아무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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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내가 흘리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 혹은 빗물인지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괜찮다. 몸을 괴롭히다 보면 그게 무엇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스스로에게 묻고, 성의 있게 대답하고, 또 진심으로 들어준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더는 문제가 아니다.


입출력 오류로 주파수가 잠시 꼬였던 것. 이제, 나와 함께 이인삼각으로 다시 가볍게 뛰면 된다. 그러니 언제라도, 내가 하려는 말에 애정을 담아 귀 기울여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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