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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erun Apr 13. 2022

실패라는 이름의 빗장 없는 감옥에서 나오기

실천부터 하기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낙제점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일기'를 쓰는 시험이었는데 막상 하얀 종이를 마주하고 앉으니 일기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늘 쓰던 일기인데 그냥 얼어붙어버렸죠. 나름 일기라고 생각하는 글을 한 장 써서 냈는데 처참한 점수를 받았죠. 정말 모르긴 몰랐던 거죠.


그 이후로는 일기를 포함한 어떤 글도 쓸 자신이 없더라고요. 나름 문학소녀라고 생각했는데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글이라고는 회사 입사 시 쓴 자소서와 학교 과제로 쓴 글들이 전부죠. 그 외의 이유로 글을 쓴다는 건 너무 두려운 행위였어요. 그런데 지금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불쑥 브런치 신청을 했죠. 글을 써보고 싶다거나 작가의 꿈을 꾼다거나 하는 그런 구체적인 이유나 계획도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어요. 그리고 일단 시도하니 문이 하나 열리더군요. 남들도 다 통과해서 유려한 글을 써나가는 브런치에 자리 하나를 마련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요. 하지만 엄두도 못 내던 글쓰기를 하고 있고 또 생각지도 못한 브런치의 작가 타이틀을 받고 나니 배움이 있어요. 일단 내가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야 내 주변 세상이 움직이는구나. 한참을 정체되어 제자리돌기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전혀 다른 이유로 시작하게 된 브런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동아줄처럼 제정신을 차리게 해 줍니다. 양질의 글을 쓸 수 있는지는 노력과 역량의 문제니 시간을 들여 꾸준히 지속해야겠지요. 


일단은 실패라는 틀에 갇혀있던 글쓰기 영역이 자유를 얻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뭐라도 써 내려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도 놀랍고요. 지속적인 시도는 있을지언정 멈춰 선 실패는 일단 없는 겁니다. 40개 60개 100개 똑같은 글을 반복해 써 내려간다 해도 그 안에 쌓이는 게 있을 테죠. 이왕이면 발전하면 더 좋고요. 혼자 며칠 쓰다 멈춰버리는 일기와 다르게 계속 쓰고 읽히고 깨지고 욕먹고 교류하고 배우고 자유를 만끽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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