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Crypto에게서 배운 것들

by 송동훈 Hoon Song

a16z's State of Crypto: The $4 Trillion Milestone and What's Next'


Crypto가 17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8년 비트코인 백서가 나온 이후 17년이 지났다는 것인데, 정말 딱 17살 같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청소년기를 막 벗어나, 어른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지만, 아직 성숙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은 그런 시기 말이다.


최근 Crypto 산업을 지켜보면서 느낀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1. 가격만으로는 혁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가격이 오르면 개발자들이 몰려들고,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다시 사용자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시총 4조 달러를 찍었지만, 개발자 수는 예전만큼 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ETF나 밈코인은 '만들고 싶은 무언가'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이 커리어를 걸 만한, 미래가 보이는 기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AI는 그런 비전을 제공했고, 많은 개발자들이 그쪽으로 향했다.


결국 사람들은 돈이 아닌 '의미'에 끌린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2. 스테이블코인이 진짜 게임체인저다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미국 국채의 상위 20위 보유자가 되었다. 한국이나 독일보다 많이 갖고 있다는 말이다. 연간 46조 달러(조정 후 10조 달러)의 거래량을 처리하고 있고, Visa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건, 이게 '싸고 빠르다'는 장점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수수료를 1페니 이하로 낮춘 건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기회는 '다르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프로그래밍 가능하고, 24시간 작동하고, 국경이 없는 돈. 이게 만들어낼 2차, 3차 효과들이 진짜 혁신이 될 것이다.


3. 제도권의 참여, 이번엔 다르다


7년 전에도 금융기관들이 Crypto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땐 '혁신적으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이 부분에서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다", "이 제품을 새로 출시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접근한다.


Stripe의 Bridge 인수가 신호탄이었다. 그 이후 Robinhood, Revolut, 심지어 Morgan Stanley까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실험'이 아닌 '사업'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4. 프라이버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를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Crypto가 어차피 복잡하고, 대중적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으로 급여를 받고, 일상적인 결제를 하게 되는 순간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금융 거래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Venmo 10년치 거래내역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당연하다.


제도권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경쟁사에게 자신들의 거래를 보여줄 수 없다. 프라이버시 기술은 아직 초기지만, 수요가 명확해지면 공급은 반드시 따라온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니까.


5. 채택이 먼저, 완성은 나중이다


"기술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채택이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다. 답은 명확했다. "그게 바로 혁신이 일어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쓰지 않는 완벽한 기술보다, 많은 사람이 쓰는 불완전한 기술이 더 빠르게 진화한다. 사용자가 생기면 문제가 드러나고, 문제가 드러나면 기업가들이 그걸 해결하러 온다. 그게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Crypto는 내년이면 18살이 된다. 법적으로 완전한 성인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명확한 규제가 생기고, 실질적인 책임이 따르게 될 것이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1~2년이 지난 뒤를 상상해보면, 지금도 상상하지 못하는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변화는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천히 오다가, 어느 순간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난다. Crypto가 바로 그 전환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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