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는 젊은 나이에 택시기사가 되었다. 다양한 택시기사가 존재할 테지만, 나는 조용히 목적지까지 가는 그런 택시기사였다. 눈 오던 그 날의 마지막 손님을 잊지 못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어떤 여자 손님이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고 있었고, 앞에 있던 택시들은 그녀를 지나쳐갔다. 아마 택시기사로써 취객을 상대하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여자를 보며, 젊은 시절 사랑했던 한 여자가 떠올랐다. 그래서 지나칠 수 있었지만, 충동적으로 그녀를 태웠다. 그녀는 찬바람을 맞아 얼굴은 불그스레 했으며, 두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떠올린 그녀가 내 택시에 타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법학과를 나온 내가, 택시기사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택시를 타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말을 쉬이 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참을 더 울다 말했다.
"저 이혼 했어요. 그래서 한잔했어요. 나도 나 좋다는 애들 많았는데, 이상한 놈 만나서..."
"어떤 분이셨는데요?"
"폭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이런 남자를 왜 만났는지. 이런 말 있어요. 여자가 남자 만나는 건 엘리베이터를 타는것 같다고요. 일 층에는 괜찮은 남자가 있어요. 하지만 한 칸 더 올라가죠. 이층에는 괜찮은 데다가 능력도 좋은 남자가 있어요. 그렇게 삼 층 사 층을 올라가요.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요. 근데, 올라갈수록 일 층에서 만났던 남자 같은 사람도 못 만나요. 그래서 제가 느낀 건 일 층에서라도 그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려야 한다는 거에요. 저도 그런 남자가 있었어요.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없었어요."
"어떤 분이셨는데요? 일층에 그 남자 분은..."
"꿈도 소박했어요. 자기는 택시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법학과를 나와서 공부도 꽤 잘했어요. 나를 많이 사랑해 줬어요. 저도 느낄 수 있었죠. 근데 그의 꿈이 작아 보였어요. 겨우 택시 기사라니! 아, 기사님 죄송해요.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에요. 그 사람은 꽤 똑똑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차버렸어요. 저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만큼 나를 좋아해주고 아껴준 사람을 못만났어요. 내가 실수 했다는 사실을 오늘 이혼도장을 찍으면서 알았어요.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 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너무나 익숙한 그녀의 집앞에 도착했다.
"6000원 입니다."
"여기요. 근데 제가 저희집 주소를 말했던가요?"
"아... 처음에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아, 그래요?"
"거스름돈 사천원 입니다."
그녀와 룸미러 사이로 눈빛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택시의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백미러로는 가만히 서서 택시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지나간 사람이었다.
전화가 왔다.
"어, 여보. 들어가는 길이에요. 마지막 손님 태우다가 늦었지요. 지은이는 자요? 아, 금방들어 갈께요."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녀는 그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