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이란 있는 그대로를 오롯이 직시하는 것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산토키 소마, 스다 마사키, 아이묭 등
왓챠: 3.4
IMDb: 7.5
내 별점:★★★★☆
한줄평: 삶이란 있는 그대로를 오롯이 직시하는 것
줄거리
전쟁 중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의 고향으로 이사 온 마히토는 낯선 환경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왜가리를 만나고, 왜가리는 마히토를 탑 안의 세계로 초대하는데..
리뷰
나에게 이 영화는 성장 영화처럼 느껴졌다.
크게 두 가지로 생각의 흐름을 나눠보았다.
1. 현재에 대한 수용
이 영화의 여정은 어머니를 찾는 과정이다.
작중 어머니는 두 명이 제시된다. 한 명은 마히토의 실제 어머니이고 다른 한 명은 마히토의 새엄마이자 어머니의 동생 나츠코이다. 마히토의 여정은 이 두 어머니를 찾기 위한 것이다.
어머니를 찾는다는 것이 내포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미안의 구절이다.
이 영화에서 마히토는 주변인들에게 여러 보호를 받는다. 때로는 아버지에게, 때로는 새엄마에게, 때로는 저택의 할멈들에게.
그러나 익숙지 않은 낯선 이들의 이런 친절한 대우에 마히토는 차갑게 대한다.
그런 마히토를 보호라는 '알'에서 나오도록 유도하는 존재는 왜가리인데, 독특한 점은 '알'에서 나오려는 동기가 '알'속의 안온함을 제공했던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였으며 끝내,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통해 '알'속에서 나오게 된다.
즉, 어머니를 찾는 여정이 곧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찾는 여정은 우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탑 안의 세계에 어머니가 존재하는 건 수년 전 어머니가 탑 안에 들어왔을 때의 어머니였고, 영화 후반부 어머니와 마히토는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기에 어머니를 찾는 과정은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고 살아있는 지금을 살아내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엄마 나츠코를 찾는다는 것 또한 현재를 수용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즉, 있는 그대로에 대한 존중을 통해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2.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현실로 다가서다.
탑 안의 세계는 현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한 위치에 있다. 마히토의 큰 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그 세계의 지도자를 맡기려 하고 잉꼬대왕은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데, 내 생각에 큰 할아버지가 만드려 하는 세계는 이상세계 같은 곳이었던 것 같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꾸며 호기롭게 시작한 탑 쌓기였으나 실제로 탑 안의 세계에서 펠리컨은 와라와라를 잡아먹고 그 펠리컨은 히미에게 공격당하며 앵무새들은 굶주리며 자신의 종족이 아닌 이들을 배척한다.
이는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표방한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는 듯하다. (온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적는 내용은 아닌지라 전반적인 흐름에만 주목해줬으면 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기하며 새로운 체제로의 변혁을 꿈꾼 마르크스의 공산사회는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구도 속에서 노동자가 오롯이 자신의 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구축하자는 것이 그의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상사회인 공산사회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과도기적 상태에 해당하는 사회주의 형태의 국가들이 도래하며 마르크스의 사상은 마치 그가 전체주의 국가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양 변질되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면 큰 할아버지는 이상세계를 꿈꿨으나 그런 세계에 대한 소망은 자신의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잉꼬대왕과 같은 그릇된 지도자들로 인해 좌절된다.
마히토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이상 세계의 지도자가 되기에 본인은 자신의 머리를 돌로 가격해 상처를 입히는 등 이미 악의를 가진 불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며 거절한다.
결국 큰 할아버지가 바란 자신의 후계자는 사실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상세계는 이상세계일뿐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결핍을 가진 채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마무리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이 영화는 완벽한 이상을 꿈꾸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큰 할아버지는 탑을 쌓고서 그 세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던 반면 마히토는 그저 탑 안의 세계 속 나무조각?(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만을 들고서 살아가는 것을 보며 양귀자의 모순 중 "세상은 탐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탐구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즉, 마히토는 이상적인 관념의 틀을 정해두고 그에 따라 살기보다는 이상세계의 단편(나무조각)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현실을 살아가겠다는 포부를 표현한 것이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