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낡은 사랑. 그럼에도 남아있는 나이테에 대하여
by
이동현
Nov 21. 2023
아래로
해제
노년에 다가서는 황혼의 부부가 29년간의 결혼 생활 중 어느덧
느끼게 된 서로에 대한 '권태'를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 속 에드워드(빌나이)와 그레이스(아네트 베팅)는 그러한 권태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데,
에드워드는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안젤라)을 만난 후, 그레이스와의 관계를 관두려 한다.
반면, 그레이스는 그동안의 사랑
이
비록 '착각'이었을지라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으며 부부란 원래 '이런' 관계라 생각한다.
결국 에드워드는 그레이스를 떠나고, 그레이스는 혼란스러워하며 고통받는다.
끝내 에드워드, 그레이스는 각자의 삶을 산다.
리뷰
우리는 대게 타인에 대해 무언가 '얘는 이런 사람이다'식으로 규정하려 한다.
특히 이 경향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짙어지는데, 아마도 이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감정 소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내가 사랑한 상대방의 모습이 오직 '일부'였거나 심지어 그 전부가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그저 그러한 관계를 인정하고 살아가기도 하고, 에드워드처럼 새로운 관계를 찾는 경우도 있다. 옳은 방향이란 건 딱히 없는 것 같다. 다만 서로에게 극복 못할 상처는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인상적인 부분
1. 정적인 에드워드, 동적인 그레이스
인물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작중 에드워드는 아침식사로 토스트를, 이후에 커피를 타서 한잔은 본인이, 한잔은 그레이스에게
건넨 후 위키피디아를 편집하며 하루를 보낸다.
한편 그레이스는 에드워드가 타준 커피조차도 시간이 지나 식어버리면 안 마시고, 감정기복도 꽤나 심한 편이며 자기주장도 매우 강한 편이라 주변인들을 지치게 한다.
이러한 묘사를 바탕으로, 에드워드는 '정적인'사람에, 그레이스는 '동적인'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둘의 관계에 변화를 꾀하는 인물은 '정적인' 에드워드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차분하고 무던한
사람이라고 해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였고, 변화가 두렵기도 하여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의 인연은 그런 사람을 변화하게 한다. 그래서 변화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이지만 필연적이다.
한편 동적인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자신을
지탱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비록 실제로 친밀하지 않고, 단지 친밀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급작스러운 변화를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며 변화 전의 상태로의 복귀를 갈망한다.
상반된 상황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관계의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이 변화는 때때로는 한 층 더 성숙된 관계의 도약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별을 초래하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선택할 뿐이다.
2. 여기에 와본 적이 있다.
그레이스의 시집 제목이다.
극
중 이 말은 '당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한 때의 누군가가 느꼈던 감정이기에 혼자라고 쓸쓸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
(1)
첫 번째로
, 그레이스의 경우, 에드워드에게 버려진 후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하루종일 멍하게 지내고 남편이 머물던 자리를 생각하며 하루를 지낸다. 심지어 자살을 생각할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레이스는 시집 제목처럼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을 여러 인물 유형을 생각해 본다.
과부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차라리 과부는 죽은 남편을 추모하며 그 이를 그릴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즉, 여기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을 찾기가 부단히 힘들었던 거다. 그러나 이윽고
결말 부분에 가서 그레이스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결국 그레이스는 자신이 시집 제목처럼 후에 누군가에게 '여기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이 되어주었다.
(2)
두 번
째 방향은 ‘여기 와본 적이 있는 사람들’과 ‘여기에 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차이로 이 말을 생각해 본다.
즉, 단편적으로 보면 그저 황혼기 남성의
유치 찬란한 외도에 불과한 이 상황에 대해 그레이스와 에드워드의 아들 제이미의 친구들은 '너네 아버지가 잘못하신 거야'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고집불통에 자존심만 하늘을 찌르는 그레이스를 보고 있자면 오히려 에드워드에게 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사실은 그저
바람피운 아저씨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아들 제이미조차도 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한다. 오히려 때로는 아버지를 더 공감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기 와본 적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차이'는 크다.
인간이란 본래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들이댈 수 없는 복합적인 존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애초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란 없다.
영화 전반에 등장한 에드워드를 보고 있자면 조용하고 정적이며 안정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지
만 그가 1년여 동안 아내에게 숨기고 외도를 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고 해
서 에드워드를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건 '여기 와본 적 없는 사람들'의 협소한 관점에서의 판단일 뿐이다.
'여기 와본 적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이 상황에 처해 감정을 나누는 이들에게 좋은 혹은 나쁜 에드워드는 없다.
버림받은 그레이스조차도 에드워드를 사랑하니 말이다.
그저 에드워드라는 사람만이 있는 것이다.
결론
대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에 다소 전개가 느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빌나이와 아네트 베팅의 훌륭한 연기 덕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또한 후반부에 가서야 이해되는 복선의 기능을 하는 여러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보는 내내 꽤나
응집성 있는 짜임새를 구성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사랑과 사람에 대해 이분법적 잣대보다
복잡 미묘하게 다루고 있기에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빌나이 배우를 좋아하는 내 사심을 약간 담아 나에겐 인상 깊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결혼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 작품도
감상해 봐야겠다.
keyword
사랑
영화
권태
작가의 이전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