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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Feb 19. 2024

언어와 권력 15

일방적인 말의 권력을 저지할 방법: 이강인 선수 사건으로부터

1. 이강인 선수 사건을 두고 많은 분들이 대립이나 경멸이 아닌 중재, 배려, 호혜, 상생 등 다른 시각으로 다른 언어를 서로/각자의 창에 남겨주고 계세요. 제 글도 지난 며칠 동안 공유만 수십차례 되었고 저와 페친인 분은 오늘 제도권 미디어에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공적 발언도 했습니다. 감동입니다. 


2. 서로 인용하면서 여러 장르와 스타일로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로 계속 얽혀진다면 관행적으로 재생산되는 말의 권력에 고삐가 잡힐 수 있습니다. 고작 개인들의 SNS 창이라도 텍스트들이 자꾸 묶이고 교환되면 그건 나름의 딴딴한 의미사슬이 되어서 지배권력이나 인플루언서 미디어의 거친 공세를 가로막게 합니다.


3. 며칠만에 다급하게 유통되는 (이강인 선수 관련 텍스트의) 이데올로기는 대개 허술하게 급조된 셈이라 (무언가로부터 분명하게 저항이 되면) 거침 없이 확장되던 명분이 조정되기 때문입니다. 국격이든, 전통이든, 팀 스포츠의 운영방식이든, 특정 텍스트들을 유도하는 이데올로기들은 늘 유동적이고 불완전한 상태로 접합되어 있거든요.


4. 오늘 관련 뉴스의 헤드라인을 훓어 보세요. 손흥민-이강인 선수의 대립을 당연한 것으로만 전제하지 않는 기사와 논평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5. 여전히 고립과 대립을 조장하는 기사도 많지만 다른 텍스트도 눈에 보이니 우리 내면도 그만큼 좀 편해지지 않나요? 거친 말을 무한정 방치하면, 나도 거칠어지거나, 거친 세상에 위축된 채 비루하게 살아야 합니다. 


6. 좀 더 다양한 장르/스타일로 다른 목소리를 포갠다면, 이강인 선수를 악인으로만 정죄하는 주장, 논거, 예시, 명제 등이 그만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 조금만 더 목소리를 냅시다. ‘끝말잇기’ 놀이처럼 서로를 인용하고 각자 성의껏 만든 텍스트를 체인처럼 묶어갑시다. 


7. 불행이든 과오든 곤경에 빠진 자에게 컴패션을 갖고 말의 지혜와 소망을 더해주는 건 선한 사마리아인이 해왔던 ‘사람 살리는 일’입니다. 무너뜨리는 일보다 세우는 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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