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물로 대화를 가르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온전한 대화는 나와 너의 ‘사이’를 연결한다. 연결을 매개하는 건 참조물(reference)이다. 사물이나 상황, 감정이나 의견을 참조하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다. 그걸 참조적 의사소통(referential communication)이라고 부른다.
참조물은 한 번의 대화로 온전하게 파악되기 어렵다. 참조물은 쉽게 재현되기 어렵다. 참조물의 의미가 누구에게나 동일하거나 영구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참조물을 두고 협력적으로 대화하는, 불확실한 의미를 계속 보완하고 조정하는 관계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대화에 참여한 화자들이 참조물에 관해 넉넉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참조물을 둘러싼 오해와 불통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초‧중급 단계의 대화교육은 참조물에 관해 즉각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말하는 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교재나 시험에서 참조물에 관해 화자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지면이나 화면에 인색하게 주어진 사진, 그림, 도표, 지문, 지침 등의 참조물을 묘사하고 서술하고 비교하고 설명하는 혼자만의 대화학습이 반복된다. ‘말하기’는 곧 ‘참조물에 관한 말하기’나 다름없다. 짧은 시간에 주어진 참조물에 관해 즉각 말할 수 있다면 대화를 잘하는 것이다.
그런 관행이 지배적이라면 대화를 나누는 ‘너’와 ‘나’보다는 대화를 매개하는 참조물 자체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참조물에 관해 복수의 경로로 즉흥적이면서도 협력적으로 대화를 구성할 필요가 사라진다. 대화교육은 갈수록 지루하다. 의미를 협상하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경험하지 못 한다. 지면이나 화면 앞에서 주어진 질문에 대답하면서 참조물에 관해 강박적으로 (모범답안으로) 서둘러 말하는 연습만 반복한다.
인스타그램의 릴스나 유튜브의 쇼츠와 같은 콘텐츠도 참조물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청자는 화면에 보이고 들리는 참조물 기반의 대화를 빠른 속도로 숙지하고 소비한다. 거기에선 참조물과 분명하게 결속되지 않은 느슨하거나 산만한 대화는 등장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참조물이 없을 때조차 유의미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참조물이 느슨하게 다뤄지면서도 대화는 얼마든지 늘어질 수 있다. 참조물이 아니라, 너와 내가 대화의 주체가 된다면 말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사랑, 우정, 삶의 의미에 관한 멋진 질문이 가득하다. 거기서 어린 왕자가 비행사와 이런 말을 나눈 장면이 있다.
보이고 들리는 것만 중요하지 않다. 유형과 무형, 참조물과 비참조물,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과 막연하고도 감춰진 것은 우리의 의사소통에서 모두 중요한 대화자원이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보이는 것만 정확하게 말하는 참조적 의사소통에 집착한다면 마음으로 느끼는 걸 섣불리 말하지 못한다. 참조물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될 때 우리의 대화는 한결 편안해지고 또 그만큼 풍성해진다. 서로가 친밀하거나 위협적이지 않은 관계성만 있다면 비참조적 의사소통은 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참조물도 없이 어떻게 대화를 가르칠 수 있을까?’ ‘참조물이 엄격하게 배치되지 않고서 말하기교육이나 평가가 과연 가능할까?’ 물론 초‧중급을 넘어선 말하기교육과 평가라면 참조물이 활용되어야 한다. 언어능숙도가 상급이나 최상급 수준인 대화자라면 서사와 논증을 참조물 기반으로 상술해야만 한다. 그러나 (특히 초‧중급 언어능숙도 수준에서) 참조물 기반의 대화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대화를 함께 나누는 화자들의 필요, 개성, 전략, 재미 등은 참조물 뒤로 가려지게 된다. 참조물이 참조만 되지 않으며 주체는 전이된다.
참조물 기반의 대화교육이 너무나 진지하고도 지루하다. 일단 참조물에 관한 인지적, 감정적 과부하부터 해결해야 한다. 웬만하면 참조물에 대해 유능하게, 서둘러, 효율적으로 말하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말하고 싶은 참조물도 아닌데 자꾸 그걸 말하라고 하니 대화에 관한 부정적인 경험만 쌓인다.
대화를 통해 우린 진지하게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대화의 속성은 ‘티키타카’의 상호작용이다. 의미를 협력하며 말할 수 있는 나, 너, 우리가 대화의 공간에서 먼저 배려되어야 한다. 참조물에 관해 말하는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느슨하게 기획되어야만 한다.
출처 : 대학지성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