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25

파우스트, 작업실의 화가: 여름을 떠나보내며

by 신동일

<2025년 7월 12일>


1. 여러 지식을 섭렵했지만 공허감에 빠진 파우스트, 그는 진리를 향한 계속된 탐구를 포기하고 메피스토가 건넨 영약으로 젊은 청년이 된다. 거리에서 그레트헨이란 여성을 만나고 파우스트는 이내 사랑에 빠지면서 말한다.


2. "당신의 눈빛과 당신의 말 한마디가 이 세상 모든 지식보다도 더 소중하고 나를 즐겁게 합니다."


3. 결국 파국을 맞이하지만 미혹된 파우스트의 심정이 뭔지 알 것 같다. 그건 정말 찐이다. That is for real!!!


4. 내게.. 지식은 과연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내가 읽고 쓰는 지식이 메피스토의 영약을 거절할 만한 호기나 가치가 있을까?


5. 갖고 싶었던 회전형 원통 책장을 샀다. 그냥 마음에 들었다. 아내가 있었으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인데 마침 미국 방문 중이라 혼자서 대담하게 구매하고 고생스럽게 조립했다. 중국어 매뉴얼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맨 아래쪽 회전 판이나 바퀴는 나사로 끼우지 못했다. 회전판은 바닥에 놓고 책장을 그냥 올렸다. (그래도 돌아간다)


6. 지금까지 붙든 지식을 거듭내고 있다. 원통 책장에 그걸 돕는 신학, 미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 어문학 등의 책을 선별해서 채우고 있다. 뿌듯하다.


7. 청년으로 돌아갈 묘약도 없고 그레트헨도 없다. 그래도 원통 책장이 오늘 아침 "나를 즐겁게 한다.“


<2025년 7월 21일>

1. 이 캔버스 역시 파기되고, 실패작으로 비난받고, 혹은 다른 그림으로 덧칠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조심스런 기다림의 시간이다.


2. 응시와 창조의 순간에 몰입한 화가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화가와 관찰하는 우리의 정적은 게으름이나 생기가 없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생기로 가득한 정적이다.


3. 몰입이 끝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캔버스는 마르며.. 책은 마무리되고, 예배도 끝나며, 어두웠던 극장이 밝아질 때 '진짜 세상'의 밝은 빛에 눈을 깜박인다. 하지만 우리가 희미하게만 보았던 영원한 창조의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면 어떨까?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이 화가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기쁨과 참여의 순간이라면?


램브란트 작업실의 화가.jpg


4. 우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노동과 예배가 하나를 이룰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어진 창조자들과 함께 영원한 현재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곳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곳이 될 것이다.


5. *방학하고 한달이 지나도록 계획과는 달리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선 예상을 했지만), 보고서든 논문이든 단 1페이지도 쓰지 못했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글입니다. 문화사역자 엔디 크라우치의 <<컬처 메이킹>> 책 일부 중에 렘브란트의 <작업실의 화가>를 보며 성찰한 대목입니다. 이러다가 어떻게 되겠죠, 뭐. 연구비 다 반환하던가..


<2025년 8월 22일>

개강 첫날이 9월 1일 월요일???? 근데 심지어 내 수업이 월요일에 있다(는 사실을 지금 발견)!!?! 머리를 쥐어 뜯으며 현실을 부정한다. '아니야, 이건 조교 선생님의 실수일게야.'


망연자실이다.. '난 개강 첫날 요일에 수업을 잡지 않아, 심지어 9월 1일 수업을 내가...??'


그러나 사실 여부를 출처를 찾아 따진다고 해도 수강신청마저 끝나가는데 뭘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아.. 마치 시간을 일주일이나 도둑맞은 느낌..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따지는 것보다 야무지게 더 쉴 궁리를 해야 한다. 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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