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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또는.. 나는 솔로: 여름날의 소회

by 신동일

여름이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페북에 종종 남긴 소회를 정리해서 이곳에 옮긴다.


<2025년 6월 20일>


1. 아내가 미국에서 여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고 싶은데 그럼 준비할 일이 너무 많아져서 저는 못갑니다. 아내와 제가 여름 동안 평안하고 강건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2. 오늘 아침부터 비를 바라보며 시편 78장을 두고 묵상을 하는데 문득 청년 윤동주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식민 조선에서 몰락한 언어로 시를 쓰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3. 그는 허울 좋은 유학생이었을 뿐 그의 내면은 깨진 파편 모음이었을 터입니다.


4.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5. 어찌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는 상실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실은 더욱 고귀한 가치로, 생명의 언어로 전환되었습니다.


6. 믿음의 선인들에게도 상실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상실을 고백하고 더 귀한 것으로 봉헌한 것이 기독 역사인 것으로 압니다. 인생은 비극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도망가지만 않았습니다.


7. 성공과 과시가 제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상실을 상실로 감수하고 나도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고 오늘도 기도했습니다.


8. 냉소와 무정함이 넘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먼저 하기로 한 일부터 하나씩 잘 마칠 수 있기를..)


<2025년 7월 10일>


1. 여름은 소설이든 영화든 전통 서사에 몰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 대학과 교회에서 글 언어, 논증, 윤리적 규범에 휘감겨 사는 나로서는 평범한 말, 감정적 언어, 대중적으로 구성된 영상물이 피난처가 되곤 한다.


3. (편집된 구성이지만) 화면에 드러난 캐릭터와 플롯을 지켜보며 내가 붙들고 사는 내면과 삶의 양태성을 다시 살핀다고나 할까. 예전엔 대중 서사를 연구나 집필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4.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직접 체험은 제한적이니 영상물로나마 내가 살피지 못한 기억이나.. 혹은 익숙한 언어 바깥의 욕망을 직면하는 셈이다.


5. 페친들이 (물론 직업정신이 발휘된 비평도 많았지만) 호평한 드라마 세편 정도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그런데.. <폭싹 속았수다>는 너무 울 것 같아서 도무지 시작을 못하겠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은 찬란한 청춘이 너무 부러울 것만 같아 못보겠다. <미지의 서울>은 1인 2역의 설정부터 뭐가 뭔지 모르겠다.


6. 영화도 10편 정도 리스트가 있는데 어떤 서사든 내 안에 에너지가 너무 소모될 것 같아 시작을 못하겠다. 살림과 돌봄의 시간만으로 바쁘다. 아무래도 그냥 숲길이나 걸으며 여름 휴식을 가질 듯.


7. 그나마 매주 <나는 솔로> 데이팅 프로그램이 '인간다움'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내게 큰 웃음을 주고 삶에 애착을 다시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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