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선포자, 위험한 지배권력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정치담화는 제 연구분야가 아니지만 너무나 걱정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기가 북한이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을 때려잡자"는 막말을 하던 여당은 '1가구 1주택' 법안 발의하고, '윤석렬 대선 출마금지법'이나 최근 여러 판결을 놓고 분노심을 느낀다며 이젠 사법개혁까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2. 이런 위세와 통치라면 앞으로 언론, 학문, 종교 등도 예외없이 개혁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좌든 우든 어느 진영이든 거창한 명분으로 거대한 힘이 실리게 되면 타협과 인내심은 사라지게 됩니다. 법치, 견제, 자유의 담론은 위축되거나 왜곡됩니다.
3. 법이든 권리든 이런 게 분명한 정답이 사실 없죠. 경쟁하고, 합의하고, 다시 해석하면서 계속 포개지고 덧칠하는 것인데, 말과 글에 재갈을 물리는 권위주의 언어사회가 되면 다른 의견, 다른 판결, 다른 삶을 말했다가는 혼쭐이 납니다.
4. 위험한 권력의 징후이며 우리가 계속 미디어를 통해서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당의 모습으로부터 누구든 어디든 예외 없이 자성 없는 위험한 권력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학습하게 됩니다.
5. 대단한 영웅이나 야심찬 제도를 그다지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다 바꿀 것 같은 계몽과 개혁이 국가나 집단으로부터 너무 거침 없이 진행되면 오히려 의심해야 합니다. 더디게 진행되곤 하는 수평적이고 참여적인 토의민주주의가 사라지는 셈이며 엘리트 지배권력만이 진리의 선포자가 되는 것이죠.
6.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담화전략과 리더십을 좋아했는데요 어찌 보면 특별한 업적도 없고 답답하기도 했죠. 그러나 전쟁까지도 불사한 이항대립, 위계, 배타적 리더십의 전임/후임 대통령, 부시나 트럼프보다 훨씬 민주적이며 타협적인, 그래서 세상을 좀 더 예측할 수 있고 다수는 더욱 안심하며 살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7. 여당 정치인이 (물론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삶과 정치를 계속 아군/적군으로 구분한다면, 예를 들면 반대편을 적폐, 토착왜구, 강남, 부동산 투기, (착하지 않은) 임대업자의 몰염치 등으로 몰아붙인다면 과연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될까요?
8. 권력지향성으로 보면 이항의 다툼 정치가 표를 모으는 최고의 통치술일지 몰라도, 복잡한 세상에서 그저 감당할 것을 감당하며 살아온 다수는 불편하고 억울하고 심지어 싸우지 않을 걸 놓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9. 진보도, 보수도, 모두 귀한 가치입니다. 둘 중 하나만으로 결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속한 진영만이 진실이라든가, 반대편의 가치를 사멸시켜야 한다는 글과 말부터 우리가 버려야 합니다. 많이 공부한 분들은 손쉬운 이항대립의 논증보다는 다양한 삶의 단면, 민주주의, 자유주의, 공화, 실용, 법치에 관한 복잡한 텍스트를 쉽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10. 저 개인적으로도 언어와 권력, 통치와 자유에 관한 연구활동을 2021년에 좀 더 부지런히 재개하고 싶습니다. 저 뿐 아니라, K 방역이든 백신이든, 통치든 자유든, 많은 분들께서 양심적이고 용기 넘치는 글을 세상에 더욱 흘러 보내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