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 수업이 불편한 이유

by 신동일

A: How old is your dog?

B: Nine years

A: Nine years ! O.K., and you have had the dog since she was baby?

B: No.


영어회화 수업, 교재, 평가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문이다. 교실에서 원어민 선생님은 질문을 한다. 학생은 짤막히 대답을 한다. 선생님은 주로 영어표현이나 구문 형태에 대해 강의를 한 다음 몇몇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A는 질문한다. B는 대답한다. B가 대답을 마치면 A는 다시 질문한다. 비균형적이고 일방적인 대화의 모습이지만 우린 이걸 말하기학습의 기본 모형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이든 기업이든, 수능이든 토익이든, A가 질문하고 B가 대답하는 인터뷰 대화학습이 너무나 많다. 인터뷰식 대화는 인터뷰라는 특정 상황의 말하기 활동만을 환기시킬 뿐이다. 2인의 인터뷰 말고도 혼자 전하는 스토리-텔링도 있고, 3인 이상의 말이 겹쳐지는 의미협상의 상황도 세상엔 넘친다. 인터뷰 형식은 인터뷰를 말하는 영어만을 유도할 뿐인데, 그저 우리들은 인터뷰 대화의 학습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인터뷰 방식은 인터뷰를 통해 말하기 샘플을 추출하는 것이므로 실제적이고 자연스런 말하기 능력을 추론하는데 한계가 있다. 비원어민 영어학습자의 말하기 포트폴리오를 분석해보면 상호의존적인 대화나 인터뷰식 의사소통 능력이 자기주도적인 발표, 감성적인 스토리-텔링, 여러 명과 토론을 할 수 있는 영어능력과 비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관행적으로 우리들은 구체적인 의사소통의 목적도 분명하지 않은, 겉도는 대화로 진행되는 인터뷰 학습에 너무 공을 들이고 있다. 초급 뿐 아니다. 중급 이상의 학습자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시키는 목적이라면 대화기술을 향상시키고 영어를 사용하는 관계에서 상호협력적인 의사소통기술과 정체성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자연스런 영어대화란 무엇일까? 대화가 자연스럽다는 것은 상대방과 균형적인 대화를 유지하는 걸 말한다. 대화의 말차례를 주고 받으면서 언제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동등한 관계가 허락된다. A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B도 질문할 수 있다. B는 사실 질문을 못해서 못한게 아니다.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누구든 상대방이 제안한 화제에 능동적으로 반응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새로운 화제를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의 영어회화 수업을 관찰해보면 상호균형적인 대화의 기회가 학생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다수의 학생들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원어민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며 대화의 시작과 끝까지 절대적인 권한을 갖게 된다.


학습자가 영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의사소통은 상호협력의 역할을 요구한다. 어린 애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영어능숙도가 초급이든 중급이든 얼마든지 '대답'이 아닌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모어를 배울 때 부모나 어른에 의해 응답자의 신분으로만 강요받지 말아야 하듯이 외국어로 배우는 영어 역시 누구나 대화주제를 제시하고, 중간에 개입하고, 전개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래야만 말의 다양한 속성을 대화를 통해 배운다. 대화도 좋지만 독백형으로 길게 말하는 연습, 이야기를 자신이 반드시 마무리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그런데 혹시 학생들이 한국어로도 응답자의 역할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모어로도 이야기를 길게 누군가에게 전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닐까? 협상자와 발표자로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맡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만약 모어로도 말하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면 영어로 그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영어 뿐 아니라 한국어로도, 누군가로부터, 어디선가,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인터뷰식 대화를 강요받았을지 모른다.


말하기를 가르치고 배울 때 화자로서의 정체성이나 말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우린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왜 말을 배우는지, 왜 말을 할 때 창피한지, 왜 공부한 만큼 안되는지 생갹해보자. 아마도 개인 탓만이 아닐 것이다. 심리적 요인만도 아니다. 흥미나 동기만의 문제만도 아니다. 그보다 더 복잡한 누군가와의 관계, 권력, 사회적 구조의 문제일 것이다.


A가 묻고, B가 대답하는 구문과 표현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영어회화 시간이 계속 된다면 언어와 권력, 언어와 권리/정체성, 언어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우린 숙고해보기 어렵다. 짧게 응대하는 인터뷰식 대화학습으론 사회에서 요구하는 긴 호흡의 의사소통자로 훈련시킬 수도 없지만, 그게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영어회화’라는 판에 박힌 교과목 이름은 과연 언제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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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www.inflearn.com/course/%EB%A7%8C%EB%8A%A5%EC%98%81%EC%96%B4%ED%9A%8C%ED%99%94%ED%8C%A8%ED%84%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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