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추석 연휴가 끝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모였고 유쾌한 시간도 보냈다. 어른들이 함께 모인 곳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는 언제나 어린 꼬마들이다. '이렇게 많이 컸구나'하며 어른들은 덕담을 잊지 않는다. 용돈도 준다.
그런데 꼬마들에게는 늘 곤혹스러운 순간이 있는데 이번 명절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중앙 무대에 세워져서 갑자기 노래 한번 해야 하는 것이다. 어벙벙한 아주 어린 꼬마들이야 몇 소절 부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좀 큰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오는 게 너무 싫다. 낯선 곳에서 친하지 않은 어른들 앞에서 어찌 방실방실 웃으며 노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지친 엄마 옆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니 아직도 낯선 어떤 어른이 꾸짖듯이 말한다. '배짱이 없구나.' '그런 건 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 명절 때는 아이들이 노래 고문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에 기발하게 이런 걸 한번 상상해보자. 예를 들어서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노래 대신에 동시를 하나 써서 낭송을 해보게 하면 어떨까? 영어를 배웠다면 영시는 어떤가. 책을 읽었다면 1-2쪽 짧은 독후감도 좋다. TV만 켜면 어른이든 애든 맨날 노래하고 춤만 추는데 그게 불편한 사람들도 많을테니 나름 근사한 이벤트 아닐까?
명절이 다가오면 노래든 춤이든, 낭송이나 독후감이든, 가정마다 준비하라고 집안 어른이 리더십을 발휘하면 어떨까. 모두가 하기 불편하다면 아들이나 며느리 중에서, 혹은 사위 대표, 손자 대표 그렇게 몇 사람만 소리내어 크게 읽고 함께 듣는 구술-낭독의 가정문화를 만들어보자.
물론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러니 큰 집 가기 전에 식구끼리 연습도 해보자. 서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주자. 영상에 담긴 불편한 웃음, 문장마다 시작하는 어색한 말투, 헛기침, 불안정한 시선이나 손동작이 민망할 수 있다. 그래도 가족끼리 그걸 보며 한바탕 웃는 거다. 익숙한 가족이나 편한 친구 앞에서 연습을 하면 명절 때 더 많은 청중 앞이라도 자신감이 생길게다. 읽고 소리내서 말하고, 함께 웃고 박수 치며, 글이 말이 되고, 말도 글이 되는 일상적인 경험을 가족끼리 나눈다. 발표는 학원에서만 배우는게 아니다.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가족 낭송회 혹은 스토리텔링 페스티벌! 아, 정말 폼 나지 않는가?
고향에 다녀와서, 아니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어떤 가정은 말소리가 없는 침묵으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명절엔 늘 부모도 아이도 지친다. 부모와 친지 앞에서 겪은 속상한 일 때문에 배우자에게 버럭 화도 냈을 것이고 아이들은 눈치를 보다가 자기 방으로 숨어버린다. 그래도 오늘 밤엔 아빠와 엄마는 용기를 내어 서로에게 다시 말을 걸자. 그럴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으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자. 그러다 아이 방에 가서 소리 내어 이야기 책도
읽어주자. 눈물이 나면 눈물도 흘리자. 오늘은 언어가 수단이고 무기고 돈이 된다 뭐 그런 구태의연한 논리는 금지. 그저 말로 위로하고 스토리로 서로의 존재감을 다시 가져보자.
많은 가정의 구술문화는 주로 TV가 이끌어간다. 명절이 되어 북적일 때도, 손님들이 다 가버리고 난 후에도 거실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TV는 누군가가 꺼낼 말을 찾아준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다가 켜져 있는 TV 방송의 해설자가 되어버린다. 명절에 가족이 다시 만나 서로 위로하고 재충전을 할 작정이라면 그 놈의 TV를 치워야 한다. 분명 상처받고 지친 가족 구성원이 있다. 말을 나눌만해야 누군가 말을 꺼낸다.
말이 일상이 되지 않고는 지치고 화난 마음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문화를 가르친다고 아이들에게 발표, 토론을 가르치곤 한다. 그런데 그걸 가르치려면 보다 일상적으로 즐겁게 말하는 문화가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표, 토론도 경시대회에서 벌어지는 승자와 패자의 대결일 뿐이다. 그런 곳에는 배려도 협력도 없다. 언어는 그저 나를 지키는 발톱이고 이빨일 뿐이다. 환경운동가 존 로빈스는 음식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했다.
언어와 사회와 사람을 연구하는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일상의 말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고. 말로 내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들어주는 청중이 있다면 덜 위험한 세상이다. 말이 사라지고 듣는 청중이 없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