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아래 기사는 AOA 아이돌 그룹의 얘기로 시작해서 연예계에 만연한 조롱과 비난의 가해 문화를 다루고 있지만 국내 언어사회 여러 영역에서 동일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언어차별, 언어폭력, 언어권리, 언어정체성에 관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글입니다.
폐쇄적인 조직의 "직장내 괴롭힘", "정서적 압박", "피흘리지 않고 내면을 찌부러뜨리고 일상을 부수는", "결국 심리적으로 때려눕히"는 폭력적인 "소문내기"의 사회적 관행입니다. (고) 최숙현 선수 스토리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어린 학생들, 청년들, 우리 모두가 가해와 피해에 개입되어 있습니다. 우린 서로 "어리고 약하면 [더] 보호해야 하고 아프면 돌봐야 합니다."
저는 방송에서 아이돌 청년들이 늘 선배든 동료들에게 90도로 몇번씩 굽신굽신 인사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요? 물론 위계와 질서를 유지시키는 기호적 관행이겠죠. 저는 그 장면이 늘 불편합니다.
여자 아이돌은 배시시 웃으면서 개인기를 꼭 해야 하나요? 꼭 애교 넘치게 춤을 춰야 하나요? 특히 젊은 여성 연예인은 사회정치적 가치를 개입시키는 발언을 하면 왜 절대로 안될까요? 그들을 언제까지 진공 상태에서 꺼내 쓰는 인형처럼 갇아둘 것인가요?
대단하고 유명한 선배가 무서운 상황을 만들고 후배가 바짝 얼어 있다가 결국 울듯 말듯 할 때 그 잘난 선배가 몰카라면서 낄낄대는 모든 종류의 영상 콘텐츠는 정말 불편합니다. 울리면서까지 웃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 최민수씨 가정의 몰카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두 아들이 서로 싸우고 신체적으로 가해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합니다. 그런 몰카를 기획한 방송국은 정말 고발해야 합니다.
연예인들이든, 운동선수든, 토크쇼에서 앉혀놓고 "착하다," "착해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수사 역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착함에 관한 담론체계는 다분히 기득권의 시선이고 위계적이고 규율적으로 보입니다. 이건 기타 사회구성원을 동일하게 압박하는 통치기제이기도 합니다.
제가 속한 학계도 그렇습니다. 착한 연구자, 착한 교수를 늘 요구하죠. 공적 예의를 지키고 윤리적 역할을 감당하는 것과 기득권에서 말하는 착한 품행은 다릅니다. 누구나 나름의 방식으로 권력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이 정상인데 지식/권력/담론의 전쟁터인 대학에서 사실 전혀 착하지 않은 분들이, 착함의 품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름의 담론질서를 만들어둡니다. 담론도 경쟁하는 것이니 그걸 수용할 수도 있겠으나 그게 진리의 레짐이 아니란건 보다 널리 알려야 합니다.
한가지만 질문해볼까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오면 착한 것도 도움이 됩니다. 착하다고 교수도 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평생 착하게 지내는 것도 가능할거예요. 그런데 소위 듣보잡 대학 나와서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성실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면 과연 착하게 행실하면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역량만큼 좋은 자리도 구할 수 있을까요?
AOA 아이돌 그룹 사건을 다시 한번 복기해보세요. 착해야 한답니다. 착하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제가 목격한 대부분의 듣보잡 출신의 성실하고 이쁜 청년들은 계속 착한 채 그냥 묻혔습니다. 착한 걸 신경 쓰면, 자신만의 구별된 차이점이나 나름의 역량을 소신껏 발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착한 품행의 담론질서에 대해 논쟁적으로 질문하지 않고서는 폭력을 저항할 비판적 문식력도 가르칠 수도 없고, 사실 자유가 없는데 자유롭게 경쟁해야 하는 사회질서만 목격할 뿐입니다.
기사 출처: 경향신문 2020년 7월 10일. 기획사 이익 위해 감정노동 하는 아이돌…폭력 구조 속에 갇혔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019995?cds=news_edit&fbclid=IwAR1ol_u0U3tgVrId49sfE4ukI-XeoBeOPhXn66xcXxMTmN_G5Wh7_mad4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