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한 게 삶에 주는 행복
칼이 놓인 도마, 아직 식탁에 오르지 않은 빈 접시,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
"밥 먹으러 와"라는 말은 항상 제 담당입니다.
호텔외식조리과를 나와 평생 자연스럽게 “주방 담당”이 되어버린 사람.
주방을 맡은 건 늘 접니다.
“내가 이렇게 비싼 등록금을 낸 이유가… 결국 우리 와이프 밥 해주려고였나?”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조금 억울하지만 진심인 순간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와이프가 출장을 가면 저는 라면을 참 많이 먹습니다.
주방에 오래 있어본 사람은 알 거예요.
시간이 얼마나 쓱쓱 지나가는지,
그런 면에서 라면은 제 시간을 구속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와이프가 없을 때만큼은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
라면으로 한 끼, 두 끼, 세끼를 때울 때도 있죠.
그런데 어느 날, 라면에 밥 말아 김치 얹어 먹는 이 간단한 밥상이
세상 편하긴 한데…
숟가락이 멈칫거리기도 합니다.
몸에는 참 해롭단 말이죠..
그 순간 숟가락에 떠진 라면 국물 위로 와이프 얼굴이 떠올랐어요.
와이프와 함께 밥을 먹을 땐 와이프가 좋아하는 반찬들,
함께 만들었던 그릇에 담긴 국과 김이 피어오르는 따듯한 밥
그게 늘 자연스러웠는데…
라면 한 숟가락 넘기며 알게 됐습니다.
이상하더라고요. 몸은 편한데 몸을 해치고, 몸은 불편한데 몸은 건강해지고..
누군갈 위해 무언가 한다는 행위가 곧장 나를 지키는 행위가 되는 아이러니...
시간이 들고, 정성이 들고, 귀찮음이 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내 건강을 지키고,
내 삶을 연장시키는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정성의 다른 이름은 어쩌면 '사랑'이겠죠.
오래 사는 건 좋은 밥을 먹는 것이고,
좋은 관계는 적당한 불편함 안에서 유지되는 법.
삶도 어쩌면 그렇게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손이 가는 방향으로
건강하게 흘러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서로 기대어 산다는 것.
누군가가 힘들 때 잠시 더 지탱해 주는 것.
저는 밥을 지으며 삶의 필수 불가결한 법칙을 배웠습니다.
정성은 시간을 먹고 자라지만,
사랑은 그 시간을 견뎌 내는 힘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