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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DONGNAE Nov 17. 2020

월간 <디자인> 전은경 편집장의 숨어 있기 좋은 집

전은경 - 월간 <디자인> 편집장

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서울 중구 레지던스형 아파트 / 거실, 주방, 욕실, 방 3개



Editor's Note

좋은 디자인을 보는 것이 일상인 월간 <디자인> 편집장의 집은 어떠할까? 궁금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집을 직접 방문해 보니, 여느 집보다 책과 아름다운 소품이 가득했지만 전은경 편집장의 말투를 닮아 소탈하고 편안한 매력이 느껴졌다. 바쁜 일상 가운데 집에서만큼은 가만한 휴식을 즐긴다는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무엇일까?




'킨포크'스럽지 않아도 충분한 집



Q) 복도가 마치 호텔과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집 안으로 들어오니 아늑한 사무실 느낌도 나는 것 같고요. 이 집에서 산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A) 3년 정도 됐어요. 호텔이랑 아파트의 특징이 모두 있는 레지던스 형태의 집이에요. 주거 형태는 전세고요. 11년 넘게 이 근처에서 비슷한 곳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았어요. 이 집은 주변 환경이 편리한 게 가장 좋더라고요. 내려갔을 때 택시 잘 잡히고, 출근하기 좋고, 근처에 카페랑 음식점도 많고. 저는 집에서 요리도 잘 안 하거든요. 나가서 사 먹어요.



Q) 바쁜 일정 때문에 외식을 선호하시는 걸까요?

A) 평소 일정이 너무 바빠요. 아침 9시, 10시에 나갔다가 저녁에 약속이 있으면 밤 10시, 11시는 되어야 들어오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도 않고, 사실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것 같아요. 집에 오면 그냥 앉아서 쉬고 싶지, 살림이나 요리를 하겠다고 무리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거죠.


요즘에는 킨포크한 라이프스타일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집에서 요리해서 친구들 불러 같이 밥 먹고, 화분도 가꾸면서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각자의 상황과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봐요. 저는 남편하고 둘이서만 살다 보니 집은 오히려 조용한 공간이에요.



Q)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책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평소 집에서도 일을 하시나요?

A) 여기서 일을 하긴 하는데 사실 잘 되진 않더라고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거실이긴 한데, 일은 정해진 장소에서만 하고 싶고, 집에 오면 컴퓨터도 켜기 싫은 스타일이에요. 일할 때 쓰는 도구들은 아무래도 사무실에 훨씬 잘 세팅되어 있어요.




손 뻗는 모든 곳에 넉넉한 책



Q) 커다란 책장이 현관문부터 거실까지 여러 개 있네요.

A) 소장하고 있는 책을 다 읽진 않았어요(웃음). 직업 특성상 북 디자인이 좋은 책을 많이 봤고, 또 그런 책을 많이 사는 편이죠. 저는 북 디자인만 보고 책을 사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웃음). 제가 남들보다 책을 더 다양하게 읽을 편일 수는 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실 책을 무조건 많이 읽을 필요도 없고요. 중요한 책들 몇 권이라도 생각을 깊게 하면서 읽는 편이 더 낫죠. 요즘 제가 트레바리에서 '물욕 없는 디자인' 클럽장을 하고 있는데 책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고 있어요.



Q) 집에서 요즘 읽으시는 책은 무엇인가요?

A) 한 5권 정도 있는데요. 에밀리 스피백의 <낡은 것들의 힘>, 오노레 드 발자크의 <우아한 삶에 대하여>,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이에요. 종류가 다양하죠?


현관 옆 책장(왼쪽)과 북 카트에서 꺼낸 책 5권(오른쪽). 장르 불문 다양한 책들이 빽빽이 꽂혀있다. 


Q) 옆에 움직이는 북 카트가 귀여워요.

A) (이 북 카트) 너무 잘 산 것 같아요. 지금 집에 있는 책꽂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주거 형태가 전세이기 때문에 책장을 새로 짜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Q) 북카트, 현관 책장... 책장 위치에 따라 책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A) 제일 좋아하는 책들은 현관 앞 책장에, 신간은 북 카트에 모아둬요. 북카트의 책들은 일종의 심판을 당하기 전에 있는 책들이에요 (웃음). 여기에 조금 뒀다가 다른 책꽂이에 꽂거나 치워 버리죠. 제일 좋아하는 책은 일부러 햇빛이 안 드는 현관문 앞 책장에 놓았어요. 거실은 창가로 햇빛이 많이 들어서 책이 바래더라고요. 브랜드 북이나 아트북들은 다 여기에 보관하고 있죠. 밖에 나가기 전에 뿌릴 향수들도 다 여기에 뒀어요. 향수는 이름이 매력적이면 사게 되는 것 같아요. Room Service라든지, Lazy Sunday라든지. 이름 너무 멋지지 않아요?




편애 없이 좋아하는 소품과 가구 



Q)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A) 전 이 의자에 누워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요. 집에 소파가 없는 대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의자에 투자했죠. Cassina에서구입한LC4셰이즈롱이에요.르코르뷔지에,피에르잔느레,샤를로트페리앙이함께디자인한의자예요.집에 오면 대부분 여기에 앉아 있어요.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구가 이 의자예요. 여기서 TV도 보고, 음악도 듣고, 밥도 먹고, 군것질도 해요. 잘 때 빼고는 여기 앉아 있다고 보면 돼요(웃음).



Q) 장식장 위에 있는 소품들이 눈에 튀네요. 브랜드나 소품을 고르시는 특정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A) 저는 특정 브랜드나 물건에 대한 로열티가 별로 없어요. 디자인 매거진에서 일하다 보니 좋은 디자인의 물건을 정말 많이 봤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어떤 제품이나 가구를 선택할 때 예민하기도 하지만 전혀 안 예민하기도 해요. 세상에 좋은 제품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아니까요. 집에도 이런저런 인테리어 소품이나 물건들이 많긴 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의자를 제외하곤 특별히 더 중요한 건 없어요. 아, 엔조 마리가 디자인한 다네제 밀라노의 갤린더랑 11년 전 독일 출장 때 사 온 빌헬름 바겐펠트의 바우하우스 조명은 아끼는 물건이에요. 깨질까 봐 비행기 탈 때 안고 들어왔어요(웃음).


다네제 밀라노의 달력(왼쪽)과 바우하우스 조명(오른쪽)


더 이상 물건은 좋은 게 아니면, 너무 갖고 싶은 게 아니면 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한테 중요한 게 아니라면 이제 처분을 하고 싶더라고요. 있는 물건도 잘 꺼내두지 않아요. 먼지 쌓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마키시 나미의 셸브 위에올라와 있는 물건들은 살아남은 아이들이에요 (웃음). 좋아하는 것들이니 꺼내두고 보려고요.




호기심과 이사, 그리고 월간 <디자인>에서의 일



Q) 작년에 <오늘의 집>에 기고하신 칼럼 ‘내일의 집'을 읽었어요. “심지어 이사도 귀찮지 않아 아직까지는 몇 년마다 주거 환경의 ‘리셋’을 감행하는 게 싫지 않고 재미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흥미롭더라고요. 요즘에도 이사를 꿈꾸세요?

A) 제가 호기심이 많아요. 살아보고 싶은 집이 많거든요. 요즘도 오랜 아파트 생활이 질리기도 했고, 이 동네를 너무 오래 산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이사가 보고 싶어요.


그래도 지금 사는 동네를 좋아하긴 해요. 남들은 이 삭막한 도심이 뭐가 좋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도시 생활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편리성이 집 고르는데 1순위 조건이에요. 나중에는 양평 같은 교외에 살고 싶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도시 인접성이 좋고, 그만큼 제가 좋아하는 문화 시설에 빨리 갈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근처 정동길 산책하기도 좋고,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씨네큐브도 10분만 걸으면 갈 수 있고요. 일민미술관이랑 서촌도 가까워요.


편리성이 좋다고 해도 강남은 싫어요. 근처에 북한산도 있고, 남산도 가까운 이곳이 심리적으로 더 정이 가는 것 같아요.



Q) 호기심이 많은 성향은 매달 콘텐츠가 달라지는 잡지사에서 17년 동안 일해오신 이유이기도 할까요?

A) 맞아요. 저는 싫증을 되게 잘 내는 성격이에요. 똑같은 장소도 한두 번 가면 별로 재미가 없어서 잘 안 가고, 아까 브랜드 로열티가 없다고도 말씀드렸죠. 잡지는 일의 루틴은 같지만 매달 다루는 콘텐츠가 달라지니까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그래도 한 직장에서 너무 오래 일한 것 같긴 해요. 저도 이렇게까지 오래 다닐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Q) 앞으로의 커리어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시는 시점일까요?

A) 지금까지 해온 일과는 다른 형태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 워크 디자인 위크’라는 행사에서 일과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워크 디자인> 제작에 참여하고, 모더레이터 역할도 하면서 지난 몇 년간 일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앞으로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많은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텐데, 일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봐야 할 시대가 온 것 같아요. 밥벌이로서의 일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어딘가에 입사하거나 퇴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거죠.



Q) 개인의 능력이라면 경험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A) 무조건 경험이 많다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게임의 규칙이 계속 바뀌고 있으니까요. 저만해도 같은 일을 17년 동안 했지만 일은 오히려 어려워진 것 같거든요. 익숙한 부분은 물론 있지만 마냥 편하지는 않아요. 경험이 쌓일수록 추가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돼서 어려워진 것도 있고,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집이란 '피난처', 숨어 있기 좋은 곳



Q) 일을 여전히 쉽게 하려고 하지 않으신다니, 집에 오면 컴퓨터도 켜기 싫다고 하신 아까 말씀이 새롭게 이해되네요. 편집장님에게 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A) 저한테 집은 정말 쉬는 공간이에요. 집에서 취미 생활도 따로 하지 않아요.


월간 <디자인>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데, 계속 이러고 살았어요(웃음). 제가 직업이 기자이자 디자인 전문가이기도 하고, 관심 분야도 디자인, 예술, 문화, 테크 전반에 걸쳐 있다보니 일과 여가가 분리되는 삶이 아니었어요.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문화생활이라고 부른 것들을 저는 충분히 원하는 만큼 평소에 하고 있거든요.어디 놀러 가고, 전시 보고, 쇼핑하는 것 전부 좋아하지만 일을 하면서 그 욕구가 충분히 해소돼요. 어제만 해도 하루에 전시를 4개나 봤으니까요.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스타일이라 바깥에서는 활동적으로 다니지만, 집에서는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에요.



Q) 집에서 루틴이 있으신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 궁금해요.

A) 루틴이 없는 게 루틴이에요.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회사 가기 바빠요. 그것도 나름 루틴 아닌가요? (웃음) 제가 잠이 많아서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거든요. 어떤 사람은 일곱시 반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요가를 하고, 신문을 읽은 다음에 출근한다고도 하는데 저는 눈 뜨자마자 부랴부랴 뛰쳐나가서 택시 잡고 회사 가기 바빠요. 그리고 저녁에 약속이 많은 편이라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요. 평일에는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 거실 의자에 그냥 앉아서 쉬죠. 피곤하니까요.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거나. 영화를 많이 보기도 해요. 최근에는 ‘테슬라'를 봤네요.



Q) 나중에 살아보고 싶은 집이 있으세요?

A) 단독주택에 가까운데, 다른 사람이 관리해 주는 단독주택? 일종의 빌라일 수 있겠네요. 일단 아파트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사를 가려고 아파트를 몇 채 봤는데 구조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중개인 분께 ‘다른 구조는 없냐'라고 했더니 그러면 제가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저는 그런 노력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실용적인 사람이라 귀찮은 건 또 싫어하거든요. 예쁘고 아름다운 것 다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실용적이면 좋겠어요. 실용성에 집 관리도 포함되는 거고요.


그러다 최근에는 남산 맨션이 눈에 들어왔어요. 창밖으로 나무와 남산이 보이고, 아파트인데 방이 기차처럼 복도 식으로 나있는 구조가 너무 멋지고 재밌더라고요.



Q) 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때는 언제인가요?

A) 마감 끝내고 집에서 잘 때 좋아요.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요. 다음날 걱정 없이 잠에 들 수 있는 게 행복한 것 같아요.



Q) 어떤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하세요?

A) '숨어 있기 좋은 집'이요. 집은 일종의 피난처라고 생각해요. 좀 삭막한가요? (웃음)


타인이나 세상과의 과도한 접촉으로부터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숨어 있을 데가 한 군데라도 있어야 하잖아요. 밖에 나가는 순간 원하든 원치 않든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지만, 집은 그 접촉으로부터 '언컨택트(Uncontact)'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굳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내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글쎄요, 제가 싱글이거나 나이가 더 어렸다면 좀 달랐을까 싶지만, 지금의 저한테 집은 세상과의 접속이 차단되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Q) 집에 대한 시각이 다양해지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주거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거라 생각하시나요?

A) 집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사람들은 어떤 유명한 사람을 추종하고 사람들이 많이 가진 걸 똑같이 구입하지 않을 거예요. 대량생산의 시대는 끝났고,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와 제품의 가짓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특정 한 제품이 메가 히트를 치고 모든 사람이 그 제품을 사용하는 시대는 끝난 거죠. 사람들이 각자만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다양한 스몰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집의 모습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은경 님처럼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집을 찾고 있다면, 동네를 방문해 주세요. 

https://www.dongn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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