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 거울 속 사내에게, 누구십니까

by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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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 두 번 욕실 거울 속에서 낯선 사내와 마주친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매일같이 어색하다. 안부를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묻는 듯하다. 당신은 누구시냐고.


어느 연예인이 그랬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진짜 늦은 것이라고.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내 사진을 남기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훗날 추억을 꺼내어 볼 때, 거울 속의 이 낯선 사내와 다시 마주하기 싫었으니까. 30대 후반, 나의 사진첩은 그렇게 주인을 잃은 풍경과 음식 사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대로 낯선 동거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한 체중 감량이나 흰머리 염색 같은 것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삶을 대하는 근원적인 태도에 관한 문제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마흔이 되면 굉장히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10대 시절 동네 농구장에서 땀 흘리는 40대 아저씨를 보며 의아해했다. ‘저 나이에도 농구를 하나?’ 나에게 40대는 가족과 직장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었다. 말과 행동에는 연륜이 묻어나고, 세상 모든 질문에 답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 내가 아는 어른들은 항상 그런 모습으로 나를 가르쳤으니까.


그런데 마흔 중반의 나는 어떤가.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정답은커녕, 아내의 심부름으로 간 마트의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조차 길을 잃는다. 친구들을 만나보면 더 가관이다. 나이를 뭘로 먹었는지 다들 철없는 소리나 주고받는다. 얼마 전 만난 친구 녀석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의 핵심 부서 팀장이란다. 그 친구만 생각하면 그 대기업이 신뢰가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철없어 보이는 친구들이 모두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직장에서는 팀을 이끌며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렇게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나이 때, 나의 아버지는 네 자녀의 아버지이자, 사업체를 이끌던 사장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그의 어깨는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듬직한 산이었다. 집에서는 절대적이었고, 밖에서도 그의 말을 거역하는 이는 없었다. 적어도 어린 나의 세상에서는 그랬다.


그의 아들인 나는 가정에서는 등짝을 맞는 남편이고, 회사에서는 뒤통수를 맞는 직장인이다. 신기하게도 모든 문제는 내 등 뒤에서 발생한다. 후배들은 내 앞에서 그렇게 친절할 수 없으며, 나랑 일하는 것이 즐거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뒤에서 들리는 말은 다르다. ‘무섭다. 엄하다. 깐깐하다. 같이 일하기 싫다.’ 이런 말들이 선배와 동기들을 통해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날 선 단어들에 귓방망이가 얼얼해지고, 옹기투성이인 가슴에 또 하나의 상처가 새겨진다. 30대의 '열심'이 40대의 '깐깐함'으로 읽히는 기이한 경험. 나의 진심은 왜 자꾸 오해의 영역에 머무르는 걸까.


입사 초,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었다. ‘나는 결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어쩌면 지금의 후배들도 내 등을 보며 똑같은 다짐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런데, 내가 되고 싶었던 사내는 어떤 모습이었지? 이제는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다시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 아래, 길 잃은 소년의 눈빛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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