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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곱시 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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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석 Oct 28. 2020

자전거 도로와 UX

기획된 경험으로 사용자들이 행동을 바꾸도록 설득하기 


우리 동네 출퇴근 길에는 잘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가 있다. 넓은 보도의 한편에 붉은색으로 표시되어있고, 지하철 역 근처에는 자전거 보관대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멋진 경험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숫자가 늘어나지도 않아보인다). 나 또한 지하철 역까지의 자전거 이용을 멈칫거리게 되는데 왜 그런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의 총체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행동을 시작할 지 또는 지속할 지를 결정한다. 자전거를 타는 것의 가장 큰 이득은 빠른 이동과 건강일 것이다. 반면 가장 큰 위험은 안전 사고와 (주변에 크게 다친 분들이 있었다) 분실일 것이다. 즉 자전거 도로가 없는 곳에서의 자동차 위협과 지하철 역 주변의 자전거 구역 위의 행인들로 인한 사고 위험과 느린 속도가, 자전거를 타면서 얻는 이득 보다 크지 않게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인간의 의사결정이 항상 이렇게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의 총체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행동을 시작할 지 또는 지속할 지를 결정한다. 

유럽 배낭 여행 중 벨기에에서 자전거 도로에 서있던 나에게 비켜나라고 소리치던 자전거 출퇴근자, 캐나다 오타와 시내의 강변 자전거 도로로 시원하게 달리던 사람들 (자동차 보다 빨랐다), 중국 베이징 지하철 역 주변에서 자전거 보관 및 수리를 해주는 자전거 주차업체들이 생각난다. 자전거 도로를 설계할 때 부터 고객 경험 (User Experience) 총체적으로 고려했다면 지금과 어떻게 다른 모습일 수 있을지가 쉽게 생각난다. 


UX는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DVD 대여 및 스트리밍 서비스로 고객 경험을 바꾸어서 성공한 Netflix사의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시도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실패한다. 그러나 변화를 주도했을 때의 파급력은 굉장하다.” UX (user experience) 디자인이 UI (user interface) 디자인과 가장 다른 점은 사용자들의 총제적 경험에 초점을 두고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설계된 경험이 기존 경험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때 사람들은 이것을 “혁신 (Innovation)”이라고 한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Apple사의 iPod + iTunes, iPhone + AppStore와 IDEO의 쇼핑카트 디자인 등 (나이트클럽 디자인 사례도 있다)이 있다 . 최근의 국내 사례로는 “편한 가계부”를 들고 싶다. 가계부 사용을 가장 어렵게 하는 번거로운 입력을 카드사나 은행이 보내주는 SMS를 복사하여 붙여넣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시도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실패한다. 그러나 변화를 주도했을 때의 파급력은 굉장하다 (Reed Hastings, CEO of Netflix).

더 나은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타켓 사용자의 중요 경험 요소들 (Key Experience Factors)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로 달릴 때의 승차감이라는 경험 요소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였다 생각된다. 자전거 승차감은 주말에 장거리 바이킹을 하는 분들에게 중요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출퇴근 사용자에게는 자전거 승차감 보다는 안전한 이동, 분실 염려 없음이 중요 경험 요소일 것이다. 


UX는 설득을 위한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용한 기능의 제품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용자들이 해당 제품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 또는 사용 방식을 바꾸는 것은 사용자에게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효율성이 좋은 드보락 (Dvorak) 키보드 배열보다는 기존 배열인 쿼티 (Qwerty)가 여전히 쓰이는 것이다. 


고객 경험 관점에서 시스템과 서비스를 바라보는 것은 어떤 부분에서 누구를 설득해야할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UX 디자인에서는 사용자 행태 지도 (User Journey Map)와 이해당사자 분석 (Stakeholder/Ecosystem Analyses)이 진행된다. 


자전거 도로의 경우, 첫째로 사람들이 자전거를 실제로 타도록 설득하여야 한다. 즉 자전거 도로를 건설하는 것 뿐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것이 좋은 이유를 알리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자전거 사용을 가로막는 요소 (experience hurdle)들에 대한 해결방안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다른 이해당사자인 자동차 운행자와 행인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들은 자전거에게 그들의 공간을 양보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며, 그들의 의견은 자전거 경험을 효과적으로 디자인하기 위한 장치/제도/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UX는 전략적인 활동이다. 


기업경영 전략이 작업관리시대에는 테일러리즘, 품질관리시대에는 식스시그마였다면, 현재의 고객중심시대의 중심에는 UX가 있다. 애플의 혁신을 이끄는 스티브 잡스는 UX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제품 개발에 이를 면밀하게 적용하는 CEO로 보아야 한다. 


UX 디자인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어떤 곳에 투자가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전략적인 활동이다. 또한 UX 디자인은 경험 모델 (Experience Model)을 통해서 고객들의 행태를 미리 예측하고, 현재는 물론 앞으로 고객들이 접하게 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X에 투자하는 것 (사람을 뽑거나 외주과제를 주거나)에 대한 가치를 묻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 도로의 경우로 살펴보자. 자전거 도로의 건설비용은 얼마였을까?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자전거 도로의 가치는 얼마일까? 그렇다면 UX 디자인을 통해 10%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면 그 가치는 얼마일까? 


UX 디자인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어떤 곳에 투자가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전략적인 활동이다. 

제조업과 웹포털, 그리고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의 UX 상황으로 인해 서비스, 공공 시스템, 모바일 앱에서의 UX의 가치는 잘 알려져있지 않으나, 미국과 유럽에서는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공항, 병원, 대중 교통 시스템 등의 디자인에 적용되고 있으며, 벤처기업에서 개발하는 제품에도 적용되고 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대기업보다 오히려 서비스와 공공시스템 그리고 중소기업에서의 UX 추진이 더 중요하고 경제적인 가치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UX 디자인이 제공하는 고객의 관점을 가짐으로써 개선할 수 있는 경험들이 많기 때문이다. 통신사에 근무하다 보니 다양한 모바일 앱을 접하게 되는데, 좋은 기능을 제공하나 사용자들의 경험을 너무 많이 바꾸기를 요구하거나, 사용자들이 원하는 경험 수준을 만족하지 못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치 우리집 앞에 있는 자전거 통행은 없고 자동차들만 주차되어있는 붉은 색 자전거 도로를 보는 것과 같이 말이다. 


자동차가 점거한 자전거 도로, 보행로와 겹쳐버린 자전거 도로


*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던 2011년에 ZDNet에 기고한 글인데 브런치를 통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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