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관세 내라는 연락, 디지털 고문이 시작되었다.

관세법인, 카카오톡, 은행 앱의 콜라보 디지털 갑질

by 이동석


며칠 전, 카카오톡 알림으로 관세 납부 안내를 받았다.

세금은 3만 원 남짓, 안내된 절차는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 단순한 납부 과정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사용자의 시간을 어떻게 ‘갈아 넣는지’ 다시금 체험했다.



1. 첫 단추부터 막힌다 — 카카오 브라우저의 호환성 문제와 폐쇄성


관세법인의 안내 메시지에는 링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링크를 클릭하자 카카오톡 내 브라우저는 인증서를 지원하지 않는다며 페이지를 막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카카오톡은 외부 브라우저로 열 수 있는 기능을 아예 제공하지 않는다. 즉, 사용자는 다른 브라우저로 링크를 복사해 ‘직접’ 열어야 한다.




2. 은행 앱, 알지만 어렵다


관세법인이 안내한 다른 절차대로 나는 은행 앱을 열었다. 메뉴에서 찾다가 검색으로 ‘관세납부’ 메뉴에 진입했고, 전자납부번호를 입력하는 화면을 찾았다.




여기서 두 번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납부 번호는 무려 15자리 숫자. 숫자를 손으로 옮겨 적으려다 실수가 날까 걱정되어,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3. 카카오톡은 왜 ‘부분 복사’를 막는가?


내가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는 일부 복사가 불가능했다. 전체를 복사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구조.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용자에게는 불편을 폭탄처럼 전가하는 인터페이스였다. 그래서 나는 메시지를 캡쳐하고, 사진 앱에서 텍스트를 추출해야 했다. 이건 이미 평범한 사용자 경험이 아니다.


『디지털 갑질』 https://www.rainmakerdnc.com/digitalgapjil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디지털 갑질은 사용하기 어려운 소프트웨어를 계속 사용해야만 하는 사용자가 겪는 현상이다. 사용자는 ‘아쉬운 사람’이기에 부당한 요구를 감내한다.”



4. 붙여넣었더니, 중복된 숫자


문자 인식으로 복사한 전자납부번호를 은행 앱에 붙여넣었더니, 입력창에 이미 있던 ‘0127’이 중복되었다.
‘0127’은 고정 필드에 들어가 있어서, 내가 붙여넣은 문자열에도 그 값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ㅠㅠ. 앞의 0127을 지웠다. 하지만 이미 마지막 4자리 숫자는 잘려서 사라져버렸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




5. 메모 앱에서 다시


나는 메모 앱을 열어 번호에서 앞 4자리를 떼고, 뒷번호만 복사해서 은행 앱에 붙여넣는 수고를 또 감내했다.



매모 앱에서 복사한 15자리 전자납부번호를 입력했다. 드디어 성공!



6. 누구의 책임인가?


"디지털 갑질은 하나의 조직이 아닌,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들이 연결되면서 더욱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이동석, 디지털갑질, 2025).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관세법인? 카카오톡? 은행 앱?

아니다. 모두의 합작이다!


결국 나는, 단 한 건의 세금 납부를 위해: 카카오톡 → 스크린샷 → 사진 앱 → 텍스트 추출 → 메모 앱 → 복사 → 은행 앱이라는 6단계 과정을 거쳤다.


카카오톡, 관세법인, 은행 앱. 각각 따로 보면 명백한 오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연결된 사용자 여정에서는, 모든 무책임이 사용자의 시간과 집중력을 소비한다.


관세법인은 번호와 링크를 기계적으로 메시지에 담았고,

카카오톡은 메시지를 외부 브라우저로 열지 못하게 막았으며, 텍스트 부분 복사가 안되었었고,

은행 앱은 0127은 빼고 입력하게 했다.


이처럼 디지털의 무심함이 연결되면, 디지털 갑질이 된다.



7. 플랫폼 서비스의 심각한 디지털 갑질


이 중에서도 카카오톡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카카오톡은 국민 플랫폼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채팅 앱’이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 브라우저의 호환성 문제와 폐쇄성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사악한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디지털 갑질’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면, 가장 먼저 정부 서비스를 떠올린다. 틀린 인식은 아니다. 실제로 공공 시스템의 불편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짜 더 자주, 더 깊게 우리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 디지털 갑질은 바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 서비스들 속에 숨어 있다.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구조, 선택할 수 없는 앱, 복잡한 절차와 무관심한 설계가 사용자에게 부담을 전가한다.


이제는 단순한 기능 개발이 아니라, 사용자의 흐름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설계하는 경험 기획이 필요하다. 플랫폼이 커질수록, 그 책임도 함께 커져야 한다. ‘국민 플랫폼’이라면, 국민을 힘들게 해선 안 된다.



”디지털 갑질“ 책 무료 다운로드는 아래 링크에서 :)

https://www.rainmakerdnc.com/digitalgapjil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디지털 갑질 단행본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