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시 일등급 UX #6
AI 이야기를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기가 세상을 바꾼 것처럼, AI 역시 이미 우리의 삶과 일의 방식을 바꾸고 있고, 그 변화는 UX 디자이너의 역할과 채용 기준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이 글은 “AI가 무섭다”거나 “AI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바뀐 현실 속에서, UX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어떻게 분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머신러닝, 딥러닝, 추천 시스템, 자동화 기능… AI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비스 곳곳에 녹아 있었습니다. 다만 ChatGPT 이후, AI는 특정 기업이나 개발자만 다루는 기술이 아닌,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 도구가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AI 중심의 혁신을 전략 수준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CES에서는 삼성전자은 ‘AI 동반자’를, LG전자는 ‘공감’을 이야기했고, 심지어 레고조차 센서와 AI를 붙여 새로운 놀이 경험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AI가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표적 분야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이미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AI가 상당 부분의 코딩을 대신하고 있으며, 신입 개발자 채용 수요는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UX 디자인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디자인 시스템의 보편화로 비주얼 디자이너의 수요가 줄어든 데 이어, 이제는 UI 디자인 자체가 AI로 자동 생성되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UX 디자인 에이전시들조차 AI 도구를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정작 인력은 줄이는 방향으로 재편 중입니다.
그래서 “이제 UX 디자이너는 끝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UI/UX 디자이너를 빠르게 성장하는 직업군 8위로 꼽았습니다. 반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빠르게 사라지는 직업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차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UX 디자이너의 역할 변화를 이해하는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AI는 (1) 단순하고 (2) 정형화되고 (3) 반복적인 작업을 아주 잘합니다.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 중 콘텐츠 제작, 마케팅 이미지 제작은 이미 AI가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간단한 UI 또는 정형화된 UI를 디자인하는 것은 AI가 대체할 것입니다.
하지만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 이상입니다.
이전에는 사용성을 조금 더 좋게 만들고, 추가된 기능을 잘 정리해서 기존 UI에 추가하는 것이 UX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AI를 활용한 기획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카카오뱅크의 AI 검색, 당근마켓의 AI 글쓰기, Gmail의 ‘Help me write’나 ‘Smart Compose’ 같은 기능들이 그 사례입니다. 이 기능들은 단순히 “AI를 붙였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기능이 언제 등장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지
결과는 어떻게 제공되어야 할지
사용자가 이걸 신뢰해도 되는지
결과가 틀렸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이 모든 건 UX 기획의 영역입니다. 그 이유는 이전의 기술 중심 상품들이 실패했듯이 AI 상품의 90%는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SKT의 에이닷, 아마존 알렉사, 은행 고객센터의 AI 챗봇들.이들의 공통점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제 정의가 잘못되었다는 점입니다. “대화형 인터페이스면 다 해결될 것이다”라는 믿음은 틀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기술을 정확하게 활용하지 못한 UX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Designing for Interactions의 저자이자 지금은 CMU 교수인 Dan Saffer는 UXLX 2024 강연에서 말합니다. AI에는 없는 인간의 역량은 세 가지라고요.
Context: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Taste: 취향과 판단
Common Sense: 상식과 현실 감각
즉 AI는 패턴과 예측에는 강하지만 (1)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 (2) 지금 이 상황에서 맞는 선택이 무엇인지, (3) 이해관계자의 충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AI가 적용된 Product에서는 이전에는 없던 기능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실무자들이 깨닫고 있습니다. 예로 AI가 가장 활발하게 적용 중인 자율주행 자동차/택시에서 이전에는 없는 기능들을 조사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모두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경험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Golden Krishna가 2015년에 출간한 The Best Interface is No Interface의 메시지는
AI 시대에 더 중요해졌습니다 (아래 그림).
앞으로 사용자는 화면을 직접 조작하기보다 AI가 처리한 결과를 확인하고, 판단하고, 통제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UX 디자이너의 일은 점점 화면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경험의 구조와 결정 흐름을 설계하는 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AI 시대에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구현보다 기획과 전략
UI보다 문제 정의
기능보다 맥락과 의사결정
AI를 잘 쓰는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AI를 어디에 쓰면 안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해집니다.
학생이든, 취업 준비생이든, 주니어든 난이도 있는 문제를 다뤄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AI를 전제로 한 기획,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는 연습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UX 디자인의 기본 방법들은 AI에 맞추어서 변하고 있습니다. 예로 사용자 여정지도에는 AI가 추가되어서 AI Touchpoint를 발굴하고 경험을 설계하게 바뀌었습니다. 역할놀이(Role Playing)을 할 때 AI 역할자를 추가합니다. Empathy Mapping을 할 때 Sense, Say 관점이 추가되었습니다. AI를 고려한 방법론에 대해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곱시 UX의 Product UX 강의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https://www.meetpm7.com/productux).
AI는 UX 디자이너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대신 UX 디자이너의 일을 분화시킵니다. UI만 그리는 역할은 사라지고, 문제를 정의하고, 전략을 세우고, 설득하는 역할은 더 중요해집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예전 방식으로 준비하면 안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