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gsoo Jung Mar 28. 2017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홍상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보고 전투를 준비하다

  나의 한량 같고 무뇌로운 공익 생활. 그와 중에 간간히 머리를 굴리도록 만드는 것은 친구 두 명과 함께하는 글 스터디(약칭 글터디)다. 이는 책을 읽고 간단히 글을 써가야 하는 모임이다. 글에 대한 이야기보다 온갖 잡담이 주가 되곤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머리 굴릴 일 없는 나에게는 빛과 소금 같은 시간이다.


  이 모임에서는 그다지 치열하게 대립각을 세우거나, 서로를 설득할 일 없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교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구성원들이기에 더욱이 의견이 맞붙는 일은 없다. 그런데 딱 하나의 주제, 남녀문제에는 세상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남녀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로의 주관이 뚜렷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게 된다. 토론 동아리를 하던 학부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 달까.


  다음번 글터디 모임에는 책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른 영화를 추천해주고, 이것에 대한 글을 써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추천받은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이다. 나는 1도 관심 없지만, 세계적인 감독인 홍상수의 2004년도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당시에는 추천한 친구의 의도를 잘 몰랐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건 뭐 거의 선전포고다. 사라예보에서 쏘아진 탄피가 머리에 그려진다.


  제일 먼저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제목은 내용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 그냥 홍상수 감독의 집에 있는 고양이가 지어준 것 같은 제목이다. 구성과 내용은 단순하다. 주인공 세 명과 세 가지의 시점이 전부. 유지태와 김태우는 대학교 선, 후배이다. 그 둘은 오랜만에 만나고, 술을 한잔하며 과거에 있던 성현아와의 추억을 각자 회상한다. 현재로 돌아와 성현아를 만나게 되고,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조금 자극적이다. 꽤나 노골적인 19금이라서, 이 영화를 통해 선전 포고한 그 친구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방점이 찍힐 부분은 19금 장면이 아니다. 순종적인 여성상과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이를 비판하는 것, 그리고 남성의 성욕을 이용하며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여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남성은 두 부류로 나뉜다. 유지태는 폭력과 사회적 지위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에 능하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려 한다. 김태우는 조금 다르다. 유지태와 비슷한 듯 다르게 그려지는 김태우는 물리적인 폭력이나 귄위를 이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겁하고 소심한, 용기 없는 남성을 보여준다. 유지태에게서 잦은 빈도로 뜬금없이 나오던 ‘씨발’은, 강간당한 성현아를 닦아주며 그녀를 달는 김태우의 모습과 굉장히 비교된다.


  여성의 모습은 성현아의 변하는 모습을 통해 묘사된다. 젊은 성현아는 강간당하기 전 후의 태도나, 성관계를 맺을 때 소리를 내어도 되느냐고 묻는 모습을 통해 볼때, 지나치게 순종적이다. 하지만 술집 여성이 되고 난 후의 성현아는 다르다. 남성의 성적인 욕망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줄 아는 여성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영화의 대부분이 그렇듯 영화의 마지막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유지태는 제자와의 관계가 폭로될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김태우는 성현아와 유지태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게 된다. 성현아는 유지태와 김태우 모두를 잃으며 영화가 매듭지어진다.  


  남성의 욕망과 귄위의식. 그로 인해 여성이 겪는 피해들과 변화하는 여성상. 남성혐오과 여성혐오의 문제들은 이제는 조금 진부하게 느껴지는 소재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메시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아니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뜨거운 감자는 식혀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한두 번의 입김으로 식지 않는다. 감자를 식히려면 쪼개고 잘게 부수어,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정성껏 입김을 불어야 한다. 그래야 먹을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남녀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가 이 뜨거운 감자를 소화하려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면밀히 분석하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필요한 곳에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도 다음번 모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성껏 전투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약간의 사족을 보태자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홍상수라는 세계적인 감독의 영화를 훑고 싶다거나, 적당히 야하고 그런대로 흥미로운 정도의 영화를 원한다면 찾아서 볼 만하다. 그러나 p2p사이트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을거다. 화질을 신경 안쓴다면 구글링을 하도록. 스트리밍으로 영화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고기를 먹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