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꿈을 꾸는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많은것들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인 K도 그런 사람인데, 어제자 저녁약속에서도 구구절절한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나도, K도 직장을 자주 옮긴 편이었기 때문에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했을때 K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자영업이구나, 하고 웃으며 말해줬는데, 마치 '오늘은 화요일이야' 라고 말하듯 당연하고 편안한 톤이 고마웠다.
서로 다른곳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최근에 인상깊게 본 드라마는 같았다. 우리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좋았던 장면과 대사들을 대화에 야무지게 인용했다. 나는 최근에 느꼈던 불안을 얘기하면서, 사무실에 하루에 여덟시간씩 앉아있으면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퇴사한다고 말하기 전날에 강남대로 한복판을 걸었는데,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어. 세상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N개의 삶들이 있고 그 모양이 죄다 다를텐데... " 그것을 상상해보니까 내가 뭐 얼마나 대단히 특별한 결정을 했나, 얼마나 대단히 궤도를 이탈하기로 했나... 싶었다고, 스스로가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동시에 용기가 났다고 말했다. K는 강남대로가 아닌 드라마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댔다. 저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삶의 목적과 가치를 갖고 사는데... 새삼스럽게 느꼈고, 그 이후에 주변 사람에게 넌지시 건넸던 조언 비슷한 말 한마디를 돌이켜보니, 그게 꽤 오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K는 "90살에 지금을 돌아보면, 지금이 아이일 것"이라는 구씨의 대사가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말해주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지도 벌써 7년 가까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을 다소 관조적으로 대하는 K의 말에서 나는 한번 더 용기를 얻었다. 이 감정과 순간이 정말 찰나임을, 내가 한없이 보잘것없음을 느끼는 동시에, 일종의 에너지가 샘솟는 기분은 진짜 묘하다. 약해지는 동시에 강해지는 기분. 분명 으슬으슬 추운데, 나를 지키려고 온 세포들이 막 전신 단위로 열을 내고 있는, 그런 발열 상태랑 비슷한 걸수도 있겠다.
보잘것없는 우주먼지는 내 직급이 무엇인지, 연봉이 얼마인지,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가 우주에 왜 떠다니는지, 어떤 먼지로 살다가 사라질지 생각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본인이 차키를 쥐고 있는 5억짜리 롤스로이스를 쌀포대쯤으로 여기는 구씨도 그런 고민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구씨는 이미 가져봤기에 덧없음을 알고 의연할 수 있는 것일수도 ... 나는 구씨같은 비싼 차도, 미정이같은 야생성도 없으니 퇴사 이후에 밥그릇을 챙기느라 진짜 중요한 이 '우주먼지로서의 고민'을 홀대하게 될까봐 약간의 걱정이 든다. 그럴때마다 지금의 이 생각을 되짚어보면서 중심을 잡아야지. 부은 눈을 힘주어 뜨며 기록하는 오늘의 작은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