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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퇴사 4년 차, 선물가게를 차렸다. 그 다음은?

(3) 어쩌면 선물가게로 먹고살 수도 있겠는데?

by 동구리


1년 치 회고 드디어 마지막 편! 나는 어쩌다가 작업실이라고 구했던 공간을 선물가게로 바꿔버리게 되었는가..?



사실 부동산 계약서를 쓸 때만 해도, 이곳을 오픈된 업장으로 사용할 계획은 없었다. 첫 공간이다 보니 그냥 공간을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이곳의 용도는 딱 ‘작업실’ 정도로 한정하고 그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를 찬찬히 해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최소한의 작업실 구색을 갖춘 뒤에는 매일같이 선유도와 충무로를 오갔다. 집에서는 브랜딩 외주 업무를 주로 했고, 작업실에서는 실크프린팅을 주로 연습했다. 그런데 공간에 머물면 머물수록 이곳을 개인 작업 용도로만 사용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지하철역 2분 거리에 사이즈도 결코 작지 않고, 주변엔 내공이 짱짱한 맛집들이 그야말로 깔려있는 데다가, 회사건물도 많고 호텔도 많아서 직장인과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주말에는 거리가 좀 휑해지긴 하지만 조금만 걸어 나가면 을지로 상권이라서 젊은 소비자들을 곧잘 마주칠 수 있다. 이들 중, 단 몇 명이라도 와준다면...! 때마침 연말즈음엔 작업해 둔 소품들이 하나둘씩 쌓여가기 시작했던 터라, 엉성하게나마 업장처럼 내부를 재구성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오늘의 집에서 거의 모든 가구들을 조립식 혹은 캠핑용으로 사들였다(가령, 큰 창문 아래 놓인 소파와 테이블은 모두 캠핑용이라서 바람을 빼고 돌돌 말면 작고 귀여운 한 줌이 되어버린다). 3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워낙 좁고 가팔라서 이미 조립된 가구는 도무지 들일수가 없기도 했거니와 훗날 이사를 하는 상상을 하면 눈앞이 아득해졌기에... 가구를 고르며 휴대성을 따지는(!) 기묘한 쇼핑을 했다.


아찔한 계단


허겁지겁 포스기와 영수증 기계도 마련했다. 토스가 등장한 이후에 업장을 차리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1인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들, 토스포스 추천합니다. 기기 설치부터 사용방법까지 황당할 정도로 간단하다. 이 과정에서 남은 좋은 인상 덕분에, 후에 토스팀에서 PG사 이전 영업을 오셨을 때도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군데군데 벗겨진 콘크리트벽을 손보고,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꼼꼼히 청소했다. 오픈을 준비했던 시점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뼈저리게 느끼는 건데,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미덕은 성실함이 아닐까 싶다. 숨이 막히도록 더운 날에도 청소기를 돌리고, 살이 에도록 추운 날에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먼지를 털어야 하니까. 무언가를 돌보기 위해서는 인내력과 근성이 필수다.


가오픈 전날 밤 (2025/02/21)
가오픈 당일 (2025/02/22)


어찌어찌 영업시간을 정하고, 지도에도 상점등록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가오픈을 공지한 뒤 가게문이라는 것을 열기는 했지만 사실 손님이 올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다. 누군가 와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고개를 빼꼼 내밀라치면 가차 없이 짓밟아버렸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일단 최악의 상황을 가장 먼저 상상하고, 그에 대비하려는 겁 많은 성향이라서 그렇다. 실패를 과하게 두려워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두려워하고야마는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걸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는 걸까요? 가오픈 첫날에 가족친구지인을 제외하고도 낯선 손님이 여덟 명이나 와주셨고, 30만 원이 넘는 매출을 내주고 가셨다. 얼떨떨했다. 저토록 휑하고 준비가 덜 된 공간에 기꺼이 찾아와 주시다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직도 처음으로 가게문을 열었던 2월 22일을 떠올리면 한없이 감사하고, 어설픈 모습을 보여드렸다는 생각에 조금 죄송하기도 하다. 회상할 때마다 그래서그랬어를 더 멋지게 가꿔서, 훗날 더 좋은 장소에서 대접하고 싶다는 의지가 솟아오른다.


가오픈 이후부터 매일같이 손님의 시선에서 공간을 훑으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매대가 텅 빈 느낌이 드네. 신상 더 많이 만들어서 채워 넣어야겠다. 해가 지고 나면 공간이 너무 어둑어둑한데... 켜지도 않는 형광등은 쿨하게 떼어내 버리고, 레일등 같은 걸로 바꿔버릴까? 손님들이 앉을만한 의자가 부족한 것 같은데 어떤 게 잘 어울릴까? 식물도 더 많으면 좋겠는데...


'가오픈'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깍두기 행세를 하면서 보완해야 할 부분들을 초조한 기분으로 메모했다. 1달 정도는 성에 안 차는 부분이 보여도 꾸역꾸역 영업을 했고, 2주간 가게 문을 닫는다는 공지를 하고 난 다음에 빈 구멍들을 메꾸는 작업들 -손수 커튼을 만들고, 새로운 애착사물을 만들고, 제품이 보다 돋보일 수 있는 디피 방법을 고민하는 일 등등- 을 진행했다.


현재모습 (2025/08)
현재 모습 (2025/08)


여기서 초심자의 행운 하나 더. 3월 초에 업로드한 어항컵&코스터의 리뉴얼 사진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바이럴을 탔다. 동구리!그래서그랬어 제품 소개하는 글이 내 알고리즘에 떴어! 나보다 더 들떠 보이는 친구들에게서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DM와 1:1 게시판으로 쏟아지는 구매 관련 문의를 받으며 다시 한번 얼떨떨한 바보 사장이 되어버리다...


덕분에 이런저런 보완작업을 끝내고 4월 17일에 가게를 다시 오픈했을 때는, 광고비에 한 푼도 쓰지 않았음에도 손님이 붐볐다. 꿈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두려웠다. 이게 영원할 순 없다는 건 분명한데 나의 기준치는 이미 높아져버렸을 테니까, 이제 손님이 한 명도 안 오는 날에는 굉장히 울적해지겠지... 아니, 근데 제발 그러지 말자! 어차피 원래 1년간은 모아둔 돈 축내면서 작업실으로만 쓰려던 공간이잖아. 이 정도 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운도 여러 가지로 따라줬다는 걸 잊지 마! 더 욕심부리지 마! 정신 차려! 마음을 다잡기 위해, 틈만 나면 혼잣말까지 해가면서 나와의 대화를 나눴으며... 사실 요즘에도 그러고 있다.


하도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글만 읽어서는 꼭 대박 난 소품샵처럼 보일 것 같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앞서 적었던 것처럼,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 최악의 상황(쫄딱 망하는 것)을 디폴트값으로 설정해 두기 때문에, 작은 성과에도 지나치게 감격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시작한 일이고, 그마저도 제대로 하려면 아직은 멀었다.


그럼에도 근 6개월간 가게를 운영한 경험이 나에게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선물가게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무한도전적 마인드에서 '어쩌면 진짜 선물가게로 먹고 살 수도 있겠는데?!'라는 조금 더 희망을 함유한 자세로 일종의 레벨업을 했기 때문이다. 매출을 안정화시키려면 한참 멀었지만, 희망을 엿보게 해 준 오프라인 최고 일매출과 최고 월순수익은 여기에 기록해보고 싶다.


일단, 오프라인 최고 일매출.


이날은 지인 방문이 없었던 날이라서 더더욱 놀라웠다. 솔직히 한 달 매출 50만 원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일매출이 몇십만 원을 찍고 난 날이면, 선물가게로 먹고산다는 뜬구름 같은 문장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렸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기분으로 퇴근을 했다. 꿈돌이로만 살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숫자가 확인시켜 준 것 같았다.


그리고, 최고 월순수익. 온오프라인 합산 순수익이 나의 마지막 회사월급을 훌쩍 넘었던 달이 있다. 아니, 이게 된다고? 정말 어쩌면 선물가게로 먹고살 수도 있겠다... 작지만 확실한 희망은 그렇게 월말정산으로부터 생겨났다. 물론, 제가 고점만 기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매출이란 참으로 들쭉날쭉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오늘로 가게 영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을 꽉 채운 나는, 10월 즈음에 또 가게문을 잠깐 닫고 재정비할 궁리를 하고 있다. 도대체 왜?라고 물으신다면... 생존해야하기 때문이죠! 라고 답할수밖에.... 정말이지 우당탕탕 선물가게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래서그랬어는 충무로에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 확장이전해서 카페까지 겸하는 것, 엄마동생과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1년 뒤면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해있을까? 한치앞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오래 해보려고요. 오래오래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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