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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퇴사 4년차, 선물가게를 차렸다. 그 다음은?

(2) 삽질하고 또 삽질하다 (feat.재봉틀과 실크스크린)

by 동구리


지난 글에서 홀린 듯 작업실을 구했다고는 했지만, 새가슴인 나를 계약서 작성하는 순간까지 멱살잡고 이끌어줄 아주 강력한 동기가 필요했다.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만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 ...!


② 삽질하고 또 삽질하다 (feat.재봉틀과 실크스크린)


작년 이맘때쯤, 홍대에 위치한 판화작업실을 오가며 실크스크린 정규반을 수강했다. 사실 실크스크린은 오래전부터 배우고싶어서 눈여겨봤던 기법이었는데, 소재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도안을 반복해서 찍을 수 있다는 점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원하는 내게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내가 디자인한 패턴을 곧바로 이렇게 찍어낼 수 있다고? (흥분)



재료와 스킬만 갖추면 인간공장이 될 수 있음!


그런데 문제는, 이게 도무지 집에서는 할 수가 없는 작업이라는 것이었다. 큼직한 천을 시원하게 펼칠 수 있는 곳, 감광제나 물감이 여기저기 묻어도 괜찮을만한 곳이 필요했다. 어쩜, 작업실을 구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생겨버렸군......



작업실 계약과 입주를 마치자마자, 30만원짜리 소형 감광기와 5만원이 겨우 넘는 미니 재봉틀을 구매해서 작업..아니 삽질을 시작했다. 시행착오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재봉틀을 막 다루기 시작했을 땐 툭하면 실이 엉켰고, 그 원인을 몰라서 이것저것 만지고 검색해보다가 집으로 가는 막차를 여러번 놓쳤다. 초반엔 뭣도 모르고 '싸구려라서 잔고장이 많나봐!' 하고 속상해했지만 바보같은 생각임을 깨닫기까지 그다지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봉틀은 예민하고 정교한 기계였고, 실을 걸어야하는 곳에 걸지 않았다든지 레버를 끝까지 내리지 않았다든지 대부분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실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서서히 기계와 친해졌다. 학창시절에 오답을 정리하면서 문제유형에 익숙해졌던 것처럼. 그 과정에서 재봉틀을 발명한 사람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져서 재봉틀의 역사를 찾아보기도 했다...(엄청 재밌음)



실크스크린 작업 역시 녹록지않았다. 감광제, 감광기 그리고 작업환경에 따라서 초단위로 최적의 감광시간을 찾아내는것이 관건인데 이 녀석들도 장난아니게 예민했다. 수없이 망하면서 수많은 물음표들을 마주했고, 그때마다 ‘제제날다’ 선생님의 실크스크린 콘텐츠가 가뭄에 단비처럼 도움이 되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지금 남기는 기록도 누군가에게 쓸만한 정보가 되기를 바라며...)


실크스크린 작업은 재봉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감'을 필요로 한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수가 없다는 뜻이다. 물감을 밀어서 찍어내는 과정이 특히 그러한데, 천에 찍는지 종이에 찍는지 슈링클지에 찍는지에 따라서 전완근에 들여야하는 힘의 정도가 다 다르다. 천에 찍는다하더라도 그게 린넨인지, 얇은 면인지, 타이벡인지에 따라서 얼마나 세게 찍어야하는지, 몇 번 찍어야하는지가 또 다르고... 종이도, 슈링클지도 마찬가지다. 종류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레벨 1로 리셋된 게임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했다.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 '망하는 길'을 경로에서 삭제해나가면서 요령을 습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감에 따라서도 프린팅에 미묘한 차이를 두어야 했는데, 예를 들면 퍼프바인더(열을 가하면 도톰하게 부푸는 물감재료)나 펄감이 있는 특수잉크, 다른 색보다 질감이 꾸덕한 형광잉크 같은 건 점도를 내가 자체적으로 조정하기도 어렵다보니 훨씬 서둘러서 찍어야만 했다. 안그러면 금세 판이 막혀서 결과물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편법 따윈 없다! 그저 많이 망해보는 수밖에. 지금도 능숙하게 해낸다고는 말 못하겠다. 초반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을 뿐이다.



작업과정은 대부분 인스타그램으로 그때그때 기록해두었다.



한창 삽질할 때 저장했었던 짤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 하품을 하며 옷을 갈아입을때가 되서야 소매와 바지 밑단에 실밥들이 잔뜩 엉켜붙어있는 걸 알아차리곤 했다. 그뿐이랴. 물감이 여기저기 묻는 바람에 옷을 몇 벌이나 버렸는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뭔가를 씻어내야하는 작업이다보니 툭하면 손끝이 갈라졌다. 고단했고, 지금도 여전히 작업하면서 고단할 때가 많다.


근데 재밌다. 그게 모든 걸 다 집어삼킨다!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감각이 유쾌하고, 머릿속에서만 상상했던 모양이 현실세계로 톡 튀어나오는 순간이 짜릿하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화면 속 결과물들을 만들어낼때도 물론 비슷한 재미가 있긴했지만, 물성이 주는 느낌은 그 차원이 다르다. 꽤 오래갈 재미일것같다.



실크스크린 기법과 재봉틀을 활용해서 판매하게 된 애착사물들



삽질에 한창이었을때가 딱 2024년도 하반기다. 에어컨 냉방모드에서 난방모드로 옮겨가는 동안에,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시선을 어딘가에 고정시킨채로 양손을 모두 움직이는 작업이다보니, 팟캐스트가 나의 좋은 벗이 되어주었다. 요즘사여둘톡, 오랫동안 아껴들은 문학이야기요소야 덕분에 많은 힘을 얻었다. 감사합니다..! 요즘 팟캐스트를 발행해보려고 단짝씨와 틈틈이 준비중인데, 이 시기에 팟캐스트라는 콘텐츠유형의 매력을 아주 많이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음편 글을 마지막으로 1년치 회고를 마무리해야겠다. 3편에서는 2025년도 상반기에 일어난 일 -선물가게로 업장을 오픈하고 손님들이 방문하기 시작한 것- 과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선물가게로 진짜 수익이 나긴 하는지, 계속 이렇게 먹고 살 수가 있을지. 솔직하게 털어놓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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