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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G May 07. 2021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 사이

물리학 연구는 크게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으로 나뉜다. 이름 그대로 이론 물리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고, 실험 물리학은 물리 이론이 자연을 잘 기술하는지 아닌지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고 진행한다. 그러나 21세기 이후에 들어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전산 물리학 (computation physics)이라는 분야가 물리학 발전에 점점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나는 박사학위 주제로 응집물질 이론 물리학 이론을 연구했지만, 현재는 전산 물리학, 즉,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전산 물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전산 물리학은 크게 이론과 실험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게 가장 큰 특징이다. 현대 물리학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이론만으로 구체적인 실험 결과를 예측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론 물리학에서는 복잡한 자연 현상의 중요한 요소를 반영하면서도 해석적 해가 존재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이 모델을 풀어내 현상을 정성적으로 이해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러나 모델이 실제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제 자연 현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위해서는 여러 복잡한 성질들을 반영해야하지만, 이를 이론적으로 풀어내는건 매우 힘든 일이다. 바로 이 포인트에서 전산 물리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과 같이 공리 수준으로 틀릴 가능성이 없는 사실만 가정하여 시뮬레이션을 하는 제일원리(first-principles) 계산이 대표적이다. 한편, 전산 물리학은 실험적인 성격도 매우 강한데, 컴퓨터를 이용해 가상의 실험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내가 전산 물리학을 연구하게 된건 어떻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다. 학부생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 모두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실험물리학 연구실 두 곳에서 여러학기를 보냈다. 한번은 양자 광학을, 다른 한번은 반도체 계면을 연구했다. 한편, 학부를 졸업할 때가 되어 양자장론, 고급통계역학 등 심화 서적을 읽으며 이론물리학에 강하기 매료된 시기가 있는데, 이를 계기로 이론 연구실에서 인턴을 시작했고 이는 곧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막상 이론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처음 대학원 2-3년간은 뭔가 공허한 느낌이 종종 들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부족한건 아니었고, 몇가지 나름 중요한 문제들을 풀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만족이 큰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뭘 하고 있는거지? 이게 정말 실제 자연현상을 잘 설명하는건가? 중요한가?" 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다. 논리적으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쉽게 말해 머리와 가슴의 온도차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시기에 2015년에 들어 우연히 방문 연구원 신분으로 독일에 있는 시뮬레이션 그룹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정말 우연이었는데, 2014년에 이국적인 환경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학회에 참여하는 동안 한 교수와 심도있는 토론을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 교수는 나를 바로 초대했다. 나는 학회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지도교수에게 내 커리어에 대한 관련한 조언을 구했고, 나와 지도교수 모두 다른 곳에서 수개월 보내는데 긍정적이었기에 행정적인 준비가 되는대로 곧바로 독일로 향했다. 독일에 지내는 동안 처음 3개월간은 정말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웠다. 비록 간단한 코드와 시뮬레이션 경험이 없는건 아니었지만, 재대로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게 정말 많았다. 매일 동료들의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접하고 해당 주제의 논문을 읽고 소스코드를 읽으며 전산 물리학 연구의 대부분 기본기를 이 시기에 배웠다. 그리고 수개월의 시간동안 나도 처음으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지금까지 연구한 이론 결과를 정리해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데 집중했다. 물론, 고체 이론물리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마치는데 초점을 두긴 했지만, 전산 물리학으로 꾸준히 연구를 진행하며 괜찮은 논문을 몇개 쓰기도 했다. 그리고 물리학 시뮬레이션에서 중요한 대규모 병렬 컴퓨팅과 최근 화두가 되는 기계학습도 이 시기에 익혔다.


지난 몇년간은 전산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론과 실험을 함께 생각하기 시작했고, 내 이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실험 그룹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론과 실험 연구를 모두 접하며 연구를 하는데 큰 만족을 하게 되었다. 한편, 소위 '물리학적'이라고 하는 내용 말고도, 날것의 실험 데이터를 보면서 이것이 어떻게 측정되었는지, 측정 기기와 오차는 어디서 발생하는지 등을 어깨너머로 보는것도 매우 즐거웠다. 그리고 조금 늦게 알게되었지만 알고리즘, 데이터 구조 등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는것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느새 내 물리학 커리어에 있어 "내가 뭘 하는거지?" 하는 고민은 서서히 잊혀졌다. 


한편, 전산 물리학 연구를 하는데 있어 이론 물리학 배경을 갖고있는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전산 물리학을 대학원생때부터 접하면 처음부터 대규모 시뮬레이션 코드를 갖고 연구를 진행하는게 일상이 되다보니 모든것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다). 반면 내 경우는 이론물리학에서 출발해 시뮬레이션 연구를 하다보니 처음에는 내가 모든것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실제와는 거리가 있지만 내가 모든것을 이해하고 있는 코드를 직접 만들었고, 시간이 흐르며 복잡한 실제 현상을 반영하면서 내 시뮬레이션 코드가 발전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내가 쓰는 코드의 모든 부분을 가장 낮은 수준부터 (eigenvalue problem, integral/differentiation 등) input/output 의 상위 수준까지 모든 레벨을 직접 모두 만드는 경험을 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랑 같이 일하는 포스닥 동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대부분 학위를 할때 몇몇 본인 프로젝트와 관련된 코드는 이해하지만 대부분은 나머지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원리와 input/output 구조는 이해하지만, 자세한 implementation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며 일종의 내 모토가 생겼는데 이는 바로


"I do not understand if I cannot calculate"


이다. 어떤 자연현상이라도 내가 직접 계산을 할 수 있으면, 이는 곧 내가 이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직결된다. 이런 고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공학적인 응용이 근본 연구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아직 배울게 많고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조금씩 스스로 발전하는것에 만족스럽고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볼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지금은 내가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면서 접하는 결과가 적어도 제한된 조건에서 진행된 실험 결과와 배우 근접할거라는 믿음이 있고, 실제로 내 계산 결과가 측정 결과와 일치하는걸 볼때면 젼율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끔씩은 시뮬레이션이 끝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처음 결과를 볼때마다 정말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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