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9일, 집에서 멀지 않은 서초역 부근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 방문했습니다. 바로 고작 이틀 밖에 남지 않은 <롯데카드 무브 : 컬처 「그대, 나의 뮤즈-반고흐 to 마티스」> 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대, 나의 뮤즈> 는 반고흐, 르누아르, 카유보트, 클림트, 마티스 총 5명의 아티스트의 약100여점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하여 모션그래픽, 인터렉션, 프로젝션 맵핑 등 다양한 기술로 구현한 전시입니다. 단순히 그림을 보는 재미를 넘어 시각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전시라는 평이 많았기에 전시를 가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
전시의 타이틀이고 흐름이기도 한 ‘뮤즈’ 라는 단어는 본래 신화 속에 나오는 예술의 신 ‘뮤즈(Muse)’ 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예술의 여신 뮤즈는 제우스(Zeus)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으로 미술과 연극, 춤과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당시 사람들은 뮤즈가 사는 산 속의 샘물을 마시면 뮤즈의 재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고, 위대한 작품의 탄생을 돕는다고 믿었죠. 이 믿음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 존재를 ‘뮤즈’ 라고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수 많은 예술작품이 존재하고, 예술가들이 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다르듯이 그들이 영감을 받는 존재도 모두 제각각 입니다. 누군가는 뮤즈란 예술가의 연인을 의미한다고도 하지만, 모든 예술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예술가에게 뮤즈란 삶의 모든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름다운 자연에서의 영감, 생명 탄생의 신비함, 사랑하는 연인, 친구, 가족, 내가 살아가는 도시, 어린 시절의 고향, 개인적인 경험이나 인상 깊었던 사건,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 등이 누군가의 뮤즈가 될 수 있겠지요. 그들에게서 받은 가슴 벅찬 감동과 참을 수 없는 격렬한 그 무언가가 붓을 들게 만들고, 붓을 통해 영감을 표현해 내는 모든 순간을 우리는 뮤즈를 만난 순간이라고, 뮤즈가 우리의 손을 이끌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뮤즈와 함께 발견한 영감을 통해 동시대를 넘어 인류사에 길이 남는 역사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순간을 <그대, 나의 뮤즈>는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졌을 때, 나는 놀랍도록 투명한 한 순간을 체험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은 꿈결같이 다가온다.
반 고흐가 도시생활의 척박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아를(Aries)로 떠났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만큼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감각적인 색채였어요. 아를의 끝없는 밀밭과 그 위로 뜨겁게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 그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해바라기, 그와 대조되는 푸른색의 하늘의 조화는 반 고흐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큰 위로였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영감을 주는 대상이 가득했던 아를은 그 자체로 반 고흐에게는 뮤즈가 아니였을까요?
네 우정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런 가책 없이 자살로 내몰렸을 것이고 나는 비겁하니까 그렇게 끝장났겠지.
반 고흐에게 편지는 단순히 안부를 묻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편지를 자신의 상황, 작품에 대한 구상,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모두 나타내는 일종의 도구로써 활용했어요.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항상 편지를 써왔습니다.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만 무려 668통이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편지 쓰는 일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편지 속에는 두 형제가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친밀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죠. 그에 더해 편지에서 반 고흐의 예술적 고뇌, 삶에 대한 슬픔까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전세계를 강타한 이래, 수십 년간의 혁명, 정치적 격변을 거친 파리의 19세기는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길가에는 마차 대신 자동차와 기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그에 맞는 도로와 다리, 기차역과 같은 거대 건축물이 들어섰습니다. 그 당시 파리는 지금의 파리와 비교해도 손색 없을 정도로 현대적 도시의 풍경을 자랑했었죠. 경제적 풍요로움과 함께 찾아온 것은 바로 문화와 예술이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파리를 수놓았으며 만국박람회가 열리기도 했어요.
겉보기에 이렇게 화려한 파리의 모습을 인상주의 화가들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카페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모습부터 극장, 서커스, 경마, 뱃놀이, 유흥가의 풍경까지, 파리의 현란한 풍경은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뮤즈였습니다.
르누아르와 키유보트 또한 파리를 사랑하며, 파리에서 영감을 얻는 화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둘이 집중한 부분은 정반대였습니다. 르누아르는 파리지앵들이 누리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그림에 담아내었습니다. 주말이면 무도회장에 가서 춤을 추고, 평일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생기 넘치는 그들의 표정을 르누아르는 완벽하게 표현했어요.
반면 카유보트는 화려한 파리의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의 고독함에 주목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는 멋지게 차려 입은 정장의 신사, 숙녀 사이로 초라한 차림의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카유보트는 이런 상대성을 비오는 날의 축축함과 찝찝한 느낌과 함께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같은 도시를 표현해도 두 화가는 서로 다른 뮤즈를 발견했습니다. 어떤 대상을 표현하느냐 보다는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전시라는 생각이 드네요.
클림트는 빈에서 새로운 예술을 주도하던 ‘빈 분리파’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빈 분리파는 전시회를 통해 각종 예술을 선보이며 도시 자체를 예술의 장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 가운데 클림트 또한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 1902)>라는 벽화를 남기기도 했죠. 클림트와 함께 한 화가들은 사랑을 자신들의 뮤즈로 활용했어요. 사랑은 행복, 슬픔, 설렘 등 인간이 가진 여러 감정을 끌어낼 수 있을 뿐더러, 사랑이 가진 아름다움이라는 특수성은 모든 화가들이 뮤즈로 사랑을 선택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습니다.
클림트가 빈에서 활동하던 황금 시기의 대표작인 밀러의 <키스>는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한 대표작입니다. 서로를 끌어 안고 키스하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죠. 꽃밭 위에 무릎을 꿇은 채로 황금색으로 둘러 싸인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사랑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클림트 본인 또한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에밀리 폴뢰게(Emilie Louise Floge)와 클림트는 결혼을 하거나 연애하는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림트에게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첫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자매들과 옷 가게를 운영하며 빈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도하는, 소위 패션 리더였습니다. 클림트는 그런 에밀리에게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녀가 곧 그의 뮤즈였던 것이죠. 클림트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나선, 원, 사각형 등의 무늬를 통해 에밀리와 함께 작품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나는 마티스가 되고 싶다.
이 말을 한 주인공은 바로 현대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 입니다. 마티스의 그림은 종종 서투른 어린 아이의 그림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유치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앤디 워홀 같은 거장이 그를 존경하고,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화가들과 달리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림과는 전혀 관련 없는 법조계에서 근무했었죠. 하지만 복부의 통증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그에게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마티스의 어머니가 건네준 물감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 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감을 받는 그 순간, 천국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마티스는 퇴원 후 평생을 그림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는 남들보다 늦었지만, 남들보다 깊은 열정으로 그림을 대했습니다.
그는 그림의 본질이 색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이 할 수 있었던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자신만의 색을 표현했으며, ‘색채 마술사’ 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그런 마티스도 세월 앞에서는 그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70살이 넘은 나이에 하루 하루를 병상에서 보내던 마티스는 자신이 상상하는 바를 그림이 아닌 ‘종이 오리기’ 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예술은 도구의 구애를 받지 않았습니다.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색종이를 통해 세상을 표현했습니다. 그 중에는 성당을 디자인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죠.
마티스가 발견한 뮤즈는 아마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작품을 구성하는 매 순간’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자신의 뮤즈와 함께 삶의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를 현명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티스가 자신의 뮤즈를 따라가는 여정을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물감을 받고 색채를 탐구했던 ‘붉은 방’ 에서 종이를 오려 만들었던 ‘침실’,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던 ‘로사리오 성당’ 까지.
<그대 나의 뮤즈>를 감상하면서 ‘예술이 부활했다.’ 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과거에 예술이라 함은 신성, 고귀한 것이며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행위의 집합이었어요. 하지만 미디어와 디지털의 폭발적인 성장,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로 인해 예술은 더 이상 과거만큼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 공간을 꾸미는 장식물, 박물관과 전시회에서만 볼 수 있다는 인식 또한 현대 사회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더욱 <그대 나의 뮤즈>가 가치 있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의 가치를 하락시킨 주범인 디지털과 영상 기술을 결합하여 과거의 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기술과 예술의 조화 속에서 관객은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각 화가의 뮤즈를 함께 따라가면서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 ‘순간’ 을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였습니다.
전시 : <그대, 나의 뮤즈>
일시 : 2017.12.28 - 2018.03.11
장소 : 한가람미술관
주최 : 멋진신세계,(주)메이크어스
주관 : (주)제이콘컴퍼니
출처 : covart.kr/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