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으른씨 Apr 27. 2021

직장에서 만난 도른씨 Ep.6

'여성 혐오'에 대하여

남성 혐오나 여성 혐오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소재이기에 글의 서두에서 미리 밝히자면, 개인적으로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을 나누어 헐뜯는 걸 상당히 싫어한다. 차별, 피해망상 등의 단어들을 언급해가며 서로 비난하고 혐오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는 백해무익하기에, 이번 에피소드가 독자분들께 그런 콘텐츠로 비치지 않길 바란다. 그저 나와 다른 여성 동료들에게 업무가 아닌 외모에 대해 지적을 하며 피곤하게 굴던 팀장에 대해 담담히 썰을 풀어보려 한다.


내 두 번째 직장에 입사하자마자 팀장님이 섬세하고 예민하신 분인 걸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예민함이 유독 '여성'에 대해 발동되는 게 어이없으면서도 억울하기도 했다. 남성 팀원이 했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언행도 여성 팀원이 하면 불려가서 몇 시간을 혼나고, 심지어 사골 우려먹듯 그 일로 몇 주를 지속적으로 혼나기도 했다. 팀 점심을 먹을 때 습관적으로 남자 팀원이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했고 나 또한 자연스럽게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따라 한 날이었다. 


그때 갑자기 팀장이 "내가 사는 게 아닌데 왜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죠? 나더러 계산하라는 의미인가요?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가 옳은 표현입니다."라며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점심 먹는 내내 그 혼남은 끝나지 않았고, 분이 안 풀린 듯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혼냈다. 심지어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점심때 밥 먹으며 내 말실수에 대해 질리도록 언급했다.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가 숨 막힘과 억울함에 친한 남성 동료에게 "잘 먹겠습니다."라고 한 번 말해달라 부탁했다. 동료가 그 말을 하자, 팀장은 못 들은 척 넘어가며 드디어 나의 '말실수'가 아닌, 다른 소재로 대화를 했다.


그의 여성에 대한 예민함은 그가 썼던 표현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가 말하는 '여자 짓'의 기준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이라 '여자 짓'했다고 혼나는 걸 피해 가기가 몹시 어려웠다. 기분 전환 겸 네일아트를 하고 간 날이었다. 회의 때 계속 나를 포함하여 네일아트를 한 여성 팀원의 손을 번갈아보며 눈치를 주다가 마지막에는 "여성분들 손톱들이 반짝거려서 도무지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네요. 회사에 여자 짓 하러 옵니까"하고 혼냈다. 숨 막히는 꾸중 듣는 게 싫어서 그 후 나는 네일아트와 담을 쌓았다. 


나는 줄곧 긴 머리 스타일이었고 일할 때는 질끈 묶는 편인데, 어느 날 회의 때 머리끈이 끊어져 머리가 흘러내렸고 거슬려서 쓸어넘기게 되었다. 그날 나는 또 "회사에서 머리는 왜 쓸어넘기죠? 남자 꼬시려고 여자 짓 하러 옵니까"하고 혼났다. 회의 때 머리가 풀어져 다시 재빠르게 묶은 날도 마찬가지로 이유로 혼났다. 긴 머리카락에 손만 대도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되었기에,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딴지 걸리고 싶지 않아 난생처음 숏컷 스타일을 했다.


여성 대통령과 관련하여 큰 이슈가 발생되었을 때, 그의 '여성 혐오'는 극에 도달했다. 나의 고향은 대구이다. 그는 제대로 된 흥밋거리를 찾은 듯 거의 매일 나에게 "대구 출신 여자로서,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물었다. "대구 출신 여자가 모두 사리판단을 못하는 건 아닙니다. 대구 출신이든, 여자이든 무관하게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면 옳고 그름에 대해 잘 압니다."라는 같은 대답을 앵무새처럼 수없이 해도 그의 질문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2년이 흘러서야 그가 왜 '여성'에 대해 유독 예민한가에 대해 감 잡을 수 있었다. 그의 '남자친구' 존재를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그가 네일아트, 긴 머리 스타일 등 사회적 통념상 자신이 하기 난감한 '여성적인 것들'에 대해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가질 수 없는걸 다른 사람이 가지면 배 아파서 못 가지게 하는 심리였지 않을까 싶다. 


남성에 대해 호의적인 본인의 개인 취향은 잘못이 없지만, 여성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는 건 명백한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가 어떤 여성에 대해 혐오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고 해도, 결코 일반화해서는 안되는 거 아닐까. 추후 써 내려갈 나의 뼈아픈 연애사를 보면 알겠지만, 마치 내가 모든 남성을 혐오하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에서 만난 도른씨 Ep.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