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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Nov 07. 2018

책 배달부

이 아침에...

나는 요즘 남들이 이미 읽은 헌책을 사들이는 일에 빠져 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아마존에 접속하여 책을 산다. 처음에는 영미권의 책을 사다가 아마존에서 한국 책도 판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한국 책도 산다.  


소설이나 에세이집은 물론, 인문서적이나 기타 교양서적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점이다. 구매나 조회수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일단 찜해두고 기다리다 보면 가격이 뚝 떨어질 때가 있다. 이때 얼른 산다.


전에는 아버지 날이나 생일에 아이들이 무슨 선물이 갖고 싶으냐고 물으면 책 리스트를 주곤 했었는데, 이제는 아마존 선물카드를 달라고 한다. 50달러면 7-8권 정도의 중고책을 살 수 있다. 책을 사고, 읽는 재미에 빠져 3-4개월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내게 가장 먼저 책을 배달해 준 사람은 내 동생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직 책 읽는 것이 미숙했던 동생은 주말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용돈을 가지고 만화책을 한 무더기 빌려 외가에 있던 내게 왔다. 동생은 곁에 앉아 내가 만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면 그림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함께 읽었다.


그다음 바통을 넘겨받은 사람은 이모다. 이모는 집에 있던 소년소녀 세계명작 전집을 한 번에 서너 권씩 배달해 주었다. 전부 50권이 있었는데, 1편부터 차례로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재미있는 것을 골라 달라고 하는 바람에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전집을 거의 읽어 갈 무렵에는 이미 읽은 책들이 다시 배달되곤 했었다.


이모가 결혼을 해서 외가를 떠난 후에는 할머니가 책 배달부 역할을 떠맡았다. 외가 근처에 ‘문장사’라는 책가게 있었다. 난 그 무렵 발행되던 학생잡지를 거의 모두 사서 읽었는데, 책이 나올 무렵이 되면 할머니는 몇 번씩 헛걸음을 해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책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내가 조르면 할머니는 책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책방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한글을 몰랐다.) 한, 두 번 헛걸음질을 한 후에야 책이 나왔다.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평 없이 책 배달을 해 주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책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책은 방에 갇힌 나와 바깥세상을 연결해 주는 연락선이었으며 생명줄이었다. 책을 통하면 시공을 초월하여 시간여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책보다는 영상을 선호한다. 영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화면에 나오는 하늘은 모두에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하늘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구름이 낀 하늘이 될 수도 있고, 밤하늘이 될 수도 있다.


책을 통하여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잠시나마 그들의 생각을 경험하는 것도 책이 주는 선물이다. 가을이다. 고마운 이들에게 좋은 책 한 권 선물로 주고 싶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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