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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un 29. 2024

은퇴하고 1년

일상에서...

은퇴한 지 딱 일 년이 되었다. 일을 그만둔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이제 어떻게 소일할 것인지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1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가을과 봄 학기에 미술 클래스를 두 번 들은 것 외에 딱히 한 일은 없다. 벼르던 여행도 못했다.


잠자는 패턴이 조금 바뀌었다. 일을 할 때는 비록 집에서 하는 일이지만 7시 전에 일어나 8:30분쯤에는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시늉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배어있어 10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요즘은 11시 정도에 잔다. 9시쯤에 자리에 누워 인터넷으로 한국신문과 LA 타임스를 찾아보고, 킨들로 책을 읽는다. 책이 재미있으면 11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렇게 늦게 잠든 날은 다음날 7시를 넘겨 일어난다.


학교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주중에는 거의 비슷한 스케줄로 하루를 보낸다. 아침을 먹고 나면 아내는 운동을 가거나 골프를 치러 간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좋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원고를 쓰거나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이틀 정도는 미술 숙제를 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는 음악을 틀어놓는다. 7080 옛 노래나, 팝송, 요즘 커피숍에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소프트록 등을 듣는다. 한 달에 두어 번 나 또는 아내가 병원이나 치과에 가야 하고, 한두 번은 친구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는다.


하루 일과는 아침을 먹고 나서 노트북으로 메일을 정리하고 (스팸이 많이 들어와 매일 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 한국 신문을 읽고, 요즘은 오전에 Euro 2024 축구 중계를 보고 (보통 2게임을 한다), 책을 읽고, 인터넷 바둑을 둔다. 다저스 게임이 있는 날이면 오후에는 TV로 야구중계를 본다. 신문을 읽어도 전에는 헤드라인만 훑어보았는데, 요즘은 관심 있는 기사나 기획기사 등은 천천히 다 읽어 본다.


이래저래 구독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만 해도 4-5개가 되지만 보고 싶은 영화는 리스트에만 담아 놓을 뿐, 볼 시간이 없다. (믿거나 말거나)


연금 받는 것으로 생활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실제로 지내보니 그 계산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하고 나니 다소 위축되는 나를 발견한다. 전 같으면 두 번 생각 않고 샀을 물건도 구매를 망설이게 되고, 여기저기 찾아보며 가격을 비교하게 된다. 연금도 매년 인상이 되긴 하지만 요즘 물가나 임금 상승률에 비하며 턱없이 적은 액수다. 노후대책이 부족한 시니어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파트타임이라도 다시 일을 해 볼까 생각을 하다가도, 이 나이에 무슨 일, 은퇴자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게 된다.


신문 부고난에서 내 또래, 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의 부고를 읽으며 과연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가올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하고 싶었는데 못한 일,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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