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학기
대학의 한 학기 미술 클래스는 1주에 한 번, 16-18주 동안 진행되지만, 서머 클래스는 6주다. 그래서 일반 대학에서는 여름 학기에는 미술 실기 클래스가 없다. 시니어 대상 강좌인 앙코르의 서머 클래스는 1주에 두 번, 5주 동안 진행됐다. 하지만 6월에는 노예제도 폐지를 기념하는 ‘준틴스’와 7월 초 미국 독립기념일, 두 개의 연방공휴일이 있어, 수업은 8번뿐이다.
지난주에는 처음 써보는 팔레트 나이프로 그림을 그렸는데, 나름 재미가 있었다. 수업은 1시 30분에 시작해서 4시 30분까지 진행되는데, 강사인 ‘데보라’가 카메라를 자신의 캔버스에 맞추어 놓고 그림을 그리고 우린 그걸 힐끗힐끗 보며 각자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
가끔 한 번씩 강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 공유할 사람을 찾으면 몇 사람이 카메라 앞에 그림을 들이대어 보여주고,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고 강사가 조언을 해 준다. 모든 사람이 그날 주어진 주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도 된다. 같은 그림을 가지고 2-3주씩 씨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수업 분위기는 매우 자율적이며 숙제도 없고 학점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
서머 마지막 주인 지난 수요일, 제법 큰 무리 없이 작품을 끝냈다. 눈에 거슬리던 부분도 강사의 조언에 따라 손을 보니 좋아졌다. 아크릴 화는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고쳐 나가면 웬만한 것은 모두 수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내게는 아직 그런 인내가 없다는 점이다.
이날 그린 그림도 지난주 그리던 것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새로 그린 것이다. 지난주 그린 그림이 도무지 맘에 들지 않았는데, 강사는 계속 고쳐보라고 했다. 하지만 주말에 새로 시작했다. 망친 그림을 고치기보다는 새로 그리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수업 마지막 날인 목요일에 문제가 터졌다. 그날도 다른 풍경이긴 하지만 전에 이어 팔레트 나이프로 그림을 그렸다. 앞서 그린 그림에서 얻은 약간의 자신감 때문에 턱없이 많은 분량의 물감을 순식간에 캔버스에 올려놓았다. 강사인 데보라는 이런저런 색상의 물감을 조금씩 올리며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데, 이미 같은 색의 물감이 덕지덕지 발라진 나의 캔버스는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치자니 자신이 없고, 새로 시작하자니 너무 늦었다. 결국 30분 먼저 슬그머니 수업에서 빠져나왔다.
저녁에 데보라에게 고맙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만큼 더 공부를 한 셈이다. 가을 학기에 다시 그녀의 수업을 듣게 될지는 알 수 없다. LAVC 수업이 시작되고 나면 앙코르 수업을 들을 여유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여름이고, 여름방학은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