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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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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an 19. 2019

사람답게 사는 일

이 아침에...

작년에는 연예계와 정치권에서 ‘미투’ 사건들이 난무하더니, 새해를 맞아서는 쇼트트랙의 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가 코치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체육계 여기저기서 ‘미투’ 바람이 불고 있다.


운동선수들은 훈련이나 시합 등으로 어려서부터 자주 부모와 떨어져 감독이나 코치에게 맡겨진다. 어린 선수들을 잘 가르치고 보호해 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코치가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성폭행까지 했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떤 변명이나 구실로도 이들의 잘못을 덮을 수는 없다. 과연 이런 일들이 체육계에만 국한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닌 상습적인 폭행을 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행동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선배나 동료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일이며, 그러려니 하고 덮고 넘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그 사회에 그런 정서가 이미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그동안 학교와 직장, 교회 그리고 가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알고도 모르는 척, 나의 일이 아닌 척, 다들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들이 이용한 미끼는 ‘성공’에 대한 약속이 아니었나 싶다. 졸업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학점을, 등단이 필요한 문학 지망생에게는 공모전 당선을, 스타를 꿈꾸는 영화배우에게는 배역을, 메달을 바라는 운동선수에게는 대표선수 선발을 미끼로 내밀었을 것이다. 


불의를 보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이를 알리고 항의하는 대신 더 큰 것을 위해 한 번쯤은 참아내는 인내를 가르친 것은 아닌가. 그것을 미덕으로 삼지 않았던가.


악한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닌 양 시작된다. 세상사라는 것이 한 번 벌어진 일은 꼭 다시 벌어지게 마련이며 조금씩 더 커지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손바닥으로 때리다가, 회초리로 때리고, 나중에는 야구 방망이로 때리게 된다. 처음에는 귀엽다고 빰을 꼬집고, 잘했다고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안아주기도 하다가 다른 욕심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심석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를 상습 성폭행했다는 여준형 코치 한 사람이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지도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 보아야 할 때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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