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학기
세 번째 그림 과제는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캔버스에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좋아하는 윌리 넬슨이 부른 ‘Angel Flying Too Close to the Ground’를 선택했다.
천사의 도시인 LA에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담장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놓은 벽화가 무수히 많다. 대개는 천사 없이 날개만 그려져 있어 사람들이 가운데 서면 날개 달린 천사가 되는 것이다.
그림은 보통 2주에 걸쳐 마치게 되는데, 이번에는 추수감사절에 수업이 없어, 3주가 주어졌다. 첫 주에 그림을 거의 끝내고 학교에 가지고 가 교수에게 보여주니 날개를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집에서 아내가 보고 고치라고 했던 것이다. 고치고 싶긴 한데 고칠 엄두도 용기도 없다고 하니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고치자고 한다.
벽돌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에 젤 미디엄과 커피 가루를 섞어 썼다. 커피 가루가 없어 벽돌은 집에 가서 고쳐오겠다고 하니, 교수가 교직원 휴게실에 가서 커피 파드를 가져다주었다. 결국 그날 스튜디오 시간에 마스킹 테이프를 잘라 붙이고 날개를 벽돌로 다 덮어 버렸다. 교수가 날개 그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벽돌을 칠하고 나니 수업 시간이 다 끝나간다. 서둘러 교수가 둥근 붓으로 깃털 그리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아크릴 화의 어려움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물감을 새로 섞어 써야 한다는 점이다. 젤이나 물을 섞으면 조금 더디 마르기는 하지만, 팔레트에 남은 물감을 두었다가 다시 쓸 수 없다. 고친 벽돌의 색이 다르게 나왔다. 교수는 벽돌담의 벽돌도 모두 색이 같지는 않다며, 새로 만든 물감을 이곳저곳 몇 군데 칠하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고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나아 보인다. 여전히 나의 단점은 고쳐지지 않았다. 너무 조급하게 서둘러 그림을 끝내려 한다. 천사의 날개만 해도 그렇다. 드문드문 깃털을 몇 개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보고 다시 몇 개를 그려 넣고 하며 차근차근 키워나갔어야 하는데, 서둘러 너무 많은 깃털을 한꺼번에 그려 버렸다.
최근에 그림을 그리며 옷을 몇 벌 못쓰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는 캔버스를 이젤에 올려 고정시켜 놓고 그리는 사람이 자세를 바꾸어 가며 그린다. 앞에서 그리고, 옆에서도 그리고, 올려다보며 그리고, 내려다보며 그리고, 가끔은 떨어져 그려놓은 부분을 보기도 한다. 즉, 캔버스는 고정되어 있고, 화가가 움직이며 그린다. 캔버스와 화가 둘이 모두 고정되어 있는 자세에서는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고정된 자세) 캔버스를 이젤에 놓고 그리기가 쉽지 않다. 캔버스를 몸 앞에 당겨 그리게 된다. 앞치마를 두르고 토시도 했건만, 몇 시간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옷이랑 휠체어에 물감이 묻는다. 아크릴 물감이 마르면, 물로 빨거나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