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생일맞이 여행

by 고동운 Don Ko

형제들의 생일맞이 여행은 누나가 50세가 되던 해에 시작한 일이다. 누나의 생일이 다가오자 남동생과 큰 누이동생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내 형편을 알고 있던 터라 비용은 자기들이 부담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동부에 사는 누나가 오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가스’로 갔다. 2박 3일 동안 고급 호텔에 묵으며, 맛난 음식을 먹고, 비싼 쑈도 보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가 철들고 처음으로 갔던 가족여행이다.


3년 후 나의 50회 생일이 되자 동생들이 이번에는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딱히 생각나는 곳도 없고, 그 무렵 사귀기 시작한 한국에 있던 아내와 전화와 이-메일로 연애를 하고 있던 터라 여행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시 라스베가스로 갔다. 이번에는 아버지 어머니와 나, 동생 둘, 다섯이 차를 타고 가고 누나는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곳에서 만났다.


새로 생긴 호텔들을 구경하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잘 갔다. 부모님은 카지노에서 슬롯머신 도박을 좋아하셨다. 두 분이 사시던 벤추라에서 차로 45분쯤 더 올라가면 추마시 카지노가 있는데, 두 분이 자주 다니시는 것 같았다. 카지노에 자주 가는 사람들은 돈을 땄던 것만 기억하고 잃은 것은 쉽게 잊는 모양이다. 들어보면 늘 돈 딴 이야기뿐이다. 내 생일에 라스베가스에 가서도 아버지는 첫날 돈을 땄다며 우리에게 용돈까지 주었는데, 다음날 보니 아버지의 주머니에는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2년 후 남동생의 생일 여행이 우리 가족이 기억하는 가장 좋았던 여행이다. 동생은 ‘세도나’로 가자고 했다. 이때는 나도 재혼을 했고, 동생도 재혼을 해서 식구들이 늘었다. 도시락을 싸고 음식을 챙겨, 차 두대에 나누어 타고 8시간 운전을 해서 세도나로 갔다. 여행을 많이 해 본 여동생의 안내로 인디언 유적지까지 알차게 둘러보았고, 흙물을 들인 티셔츠를 사 입고 단체 사진도 찍고, 정말 좋았던 여행이었다.


3년 후, 여동생의 생일 여행이 우리들의 마지막 가족여행이었다. 동생은 바닷가 마을인 ‘캠브리아’로 가자고 했다. 정원이 아름다운 ‘파인스 랏지’에 묵었다. 아늑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것도 좋지만 다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정원에서 먹는 아침도 근사하다. 한국에서 장인어른이 오셨을 때도 모시고 갔었다. 그때는 돼지 불고기를 준비해 가서 방에서 밥을 해 먹기도 했다.


동생의 생일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여행 동안 동생은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그동안 나이가 드신 부모님은 여느 때보다 더 자기중심적이 되어 있었다. 동생의 생일 상 앞에서 두 분의 결혼기념일임을 내세우셔 동생의 심기를 건드렸다.


캠브리아까지 가는 길에는 카지노가 몇 군데 있었다. 부모님은 떠나기 전부터 카지노에 꼭 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우리들은 가서 돈을 잃고 나면 기분이 가라앉을 테니 돌아오는 길에 가자고 했다. 돌아오는 날 아침에 아버지가 늦도록 깨어나지 않으셨다.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카지노에 가려고 일찍 누우셨는데,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드셨다는 것이다. 한알로 잠이 오지 않아 하나를 더 드셨다고 한다.


돌아오는 내내 아버지는 잠에 빠져 결국 카지노에는 가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들이 조금만 더 아버지에게 양보하고 신경을 써 드렸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다시는 아버지와 카지노에 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60회 생일에는 좀 더 멋진 여행을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더 이상의 가족여행은 없었다. 환갑을 맞은 누나를 초대했지만 고사하고 오지 않았고, 내가 환갑을 맞던 해 6월에는 아버지가, 10월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지금도 가끔 세도나 여행 사진을 보며 그때의 즐거움을 곱씹곤 한다. 죽기 전에 나도 아이들과 이런 여행을 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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