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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

2025년 가을 학기

by 고동운 Don Ko

유화 클래스를 취소하려고 LAVC 어카운트에 들어가 보니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봄학기가 끝나고 바로 가을학기 등록을 하려고 하니 아직 일러 등록이 되지 않아 바구니에 담아 놓고는 그 후 등록하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니 따로 취소를 할 필요도 없다. 학교를 한 학기 쉬기로 했다.


내일을 알 수 없고, 내 마음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수채화부터 시작된 일이다. 수채화 I을 끝내고 다음 레벨인 II를 들으려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들었던 것이 아크릴 I이다. II를 듣고 그다음 III을 듣자니 아직 내 실력이 모자라는 듯싶어 유화 I을 들었다. 지난 6월, 봄학기가 끝날 때만 해도 가을에는 당연히 유화 II를 들으려 했고 수강신청을 시도하다 바구니에 담아 놓았던 것이다.


2달 반 여름방학 동안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 시작할 때는 새로운 것은 배운다는 흥분과 즐거움이 있었다. 하얀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면 만들어지는 그림이 주는 성취감이 있었다. 많이 늘었다는 교수의 칭찬을 듣는 즐거움도 있었다. 2년쯤 지나니 그림이 잘 늘지 않는다. 주변에 나 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과제물이 주는 스트레스가 조금씩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름 방학 동안 시니어 센터에 나가 마작을 배운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마작하는 재미에 빠져 월, 수요일 두 군데 시니어 센터에 나간다. 외출하고 난 다음날은 집에서 쉬고 싶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해 보려고 애를 쓴다고 한다. 잘 못하는 이유는 재능이 부족하거나 그 일이 매우 힘든 경우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라면 굳이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할 필요가 있을까. 재미있고 잘하는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그렇다, 자기 정당화다. 이 나이에 누구 눈치 볼 일 있나. 내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미술 공부는 한 학기 쉬기로 했다. 대신 피어스 칼리지 “에세이의 예술”이라는 온라인 강의를 듣기고 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이야 말로 내가 좋아하고 나름 자신 있는 영역이다.


그렇다고 그림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잘 안 될 때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하면 잘 되는 경우가 많다. 바둑이 그렇다. 바둑이 잘 안될 때가 있다. 그런 때는 며칠 쉬었다 다시 두면 기력이 회복된다. 어려운 일도 잠시 미루어 두었다 다시 보면 답이 보이지 않던가.


나이 먹어 좋은 것은 남의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할 사람도 없고, 욕하거나 비난할 사람도 없다. 누가 뭐라 한들, 그게 뭐 대순가. 나 좋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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