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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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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Oct 12. 2019

아저씨

이 아침에...

아저씨를 만났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지만 아버지의 6촌 동생이니 나에게는 아저씨다. 어려서는 이름을 부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그의 아저씨다운 어른스러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LA 아동병원에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딸의 아이를 돌보아 주려고 아줌마와 같이 왔다고 한다. 가정부를 써도 될 터인데 벌써 몇 년째 아줌마가 순주들을 돌보고 있다. 그동안은 동부 집 근처에 사는 아들 손자를 돌보더니 그건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니 아무래도 딸이 먼저라고 한다.


딸의 윌셔가 고급 콘도에서 다운타운 내 사무실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차비가 얼마인지 몰라 버스를 기다리는 한국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35 센트라고 했다. 버스가 오자 아주머니가 따라오라고 하더니 그녀의 승차권으로 둘이 탔다고 한다. 남들에게 호감을 주고 붙임성이 있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입담이 좋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1시간 반 그의 이야기만 들었다. 돈이 없어도 큰소리치고, 돈이 많아도 티를 내지 않으며, 자랑도 자랑 같지 않게 늘어놓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고 있었다.


좌골신경통으로 몸이 아파 의사인 딸에게 아빠가 고생해서 의사를 만들어 놓았는데 너는 어찌 내 아픈 것 하나 해결 못하느냐고 투정을 했더니, 딸이 하는 말인즉. “아빠, 그 병원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는 병이고요. 병원에는 고통 중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병이 낫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모르핀을 놓아주어도 잠시뿐, 계속 고통에 시달려요. 그래도 다들 견뎌내고 있어요. 그러니 아빠는 행복한 줄 아세요.”


며느리는 친정이 LA 라 얼마 전 아들과 네 식구가 친정으로 휴가를 왔다고 한다. 일이 있어 먼저 동부로 돌아갔던 아들이 다음 주에 다시 온다고 했다. 그가 아들에게 며칠 있으면 네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갈 텐데 왜 비싼 돈 들여서 다시 오느냐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인즉. “아버지, 내 와이프는 아빠 와이프와는 달라요. 요즘 여자들은 아이 한 명 이상을 데리고 여행하지 않아요.” 아이가 둘이니 하나는 자기가 와서 데리고 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어느 날 ‘나는 과연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낯선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가본 적이 없는 곳, 먹어보지 않은 음식, 해보지 않은 일들을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 하면서 살고 싶소. 여기저기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닌다. 에베레스트에서는 고산병 때문에 헬기를 타고 하산했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영화다. 그래서 집에다 작은 영화관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영어 대사의 일부는 놓치게 되는데, 집에서 자막을 켜놓고 영화를 보면 내용을 완전히 알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그날 편하게 탈 수 있는 우버를 놓아두고 굳이 버스를 타고 내 사무실로 온 것도 안 해본 일을 해보고자 하는 그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늘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간다. 생일이 이르니 학교에 빨리 갔고, 기타도 앞서 배웠고, 연애도 먼저 했다. 이제 멋진 중년의 삶도 나보다 앞서 간다. 아마도 아저씨라서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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